보물 91

안동 : 청원루

마을 초입에 자리 한 보물 청원정이 보인다. [보물 제 2050호 청원루] 안동 청원루(安東 淸遠樓)는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비교적 최근인 19년 12월에 여러 누정과 함께 보물 제2050호로 지정된다. 조선 중종 때 김번 선생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100여 년이 지난 1646년(인조 23년)에 청음 김상헌 선생이 누각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김상헌은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저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 말동 하여라" 라는 시를 남긴 분으로, 병자호란때 인조의 굴욕적 굴복을 반대한 척화주전론의 우두머리로서, 청군의 지원병 요청을 반대하는 상소로 청나라에서 6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뒤 이 누각을 지었는데, 이름도 청나라를..

안동 : 소산마을

안동으로 향한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 첫 기일이 되어  묘소를 찾아 보는 길이다.  많은 것 들이 떠오르지만, 그 간 잊고 지낸 것을 되새기며, 사람은 그저 곁을 내주다 서서이 지워지는 것인가 생각해 본다.마침 하회 별신굿 탈놀이장을 지나며 열린 문으로 들어서서 놀이에 함께 자리해 본다. 거의 끝날 무렵의 입장 이어서 인지 함께 흥이 나기 이전에 끝이 나서 아쉽다. 이 전 에 경남 고성의 오광대놀이  보존을 위해 노력과 헌신으로  애 쓰시는 분들과 인연이 닿아,  수고로움과 어려움을 본 일이 있었는데, 이곳도 전통의 문화재 보전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에 다음에는 처음 부터 자리하여 관람해 보기로 한다. [무형 문화재 하회별신굿 탈놀이] 하회마을을 나와 풍산읍으로 이동하며 소산마을을 찾아본다. 이전에 인근의..

이천 : 장암리 마애보살 반가상

경기 이천을 여행한다. 이천에서는 오래 전 영월암의 마애여래입상을 찾았었는데, 이번에는 장암리에 있는 마애보살 반가상을 찾아 본다. 보물 제 982호 였던 이 마애불은 산속의 언덕이 아닌 마을 길 옆 큰바위에 자리하고 있다.   [ 보물 제 982호 장암리 마애보살반가상]  미륵바위라는 화강암 바위가 길옆에 덩그라니 놓여있고,  앞면에 부조로 표현된 보살좌상으로 고려 경종6년(981년)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머리에 쓴 보관에는 화불이 있고, 손에는 연꽃 가지를 든 관음보살상으로,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고, 넓은 이마와 큰 눈을 가지고, 얼굴이 조화 된 미는 없는 듯 하다.  오른 발은 내리고 왼발을 오른쪽 무릎 위에 걸친 반가 자세를 취하고, 옷의 표현이 희미하다. 바위 뒷면에 "태평흥국 6년..

당진 - 신암사 금동여래좌상

신암사로 향한다.   [ 신암사] 어렵게 찾은 신암사는 좁은 농로 길을 따라 들어가는 외진 곳에 자리한 찾기 힘든 작은 사찰이다. 신암사는 고려 충숙왕때 능성 구씨의 4대손인 구예가 가교리에 터를 잡으며 지어진, 구예의 부인 아주 신씨가 남편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하여 세운 절로, 원래는 구룡사라 하였었는데 후에 신씨를 기리는 뜻으로 신암사라고 절 이름을 고쳤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보물 제 987 호 당진 신암사금동여래좌상] 1989년 보물로 지정된 여래좌상은 전체적인 모습이 청양 장곡사 불상과 유사하다고 하는데,  당당한 모습이 무게감을 주며, 미소를 담고 있어 친근감을 주고 있다. 상체는 장대하며 볼륨감 있지만 부드러운 가슴을 가지고 있고, 하체는  넓으며 무릎의 근육이 표현 되어 있는 안정된 모습..

당진 _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 삼존좌상

[인법당] 보물인 삼존불이 자리한 건물로 전각의 가운데 모셔져 있다.   대웅전이 아닌 이곳에 차려진 법당의 유리함 안에 잘 모셔진 삼존불상의 모습이다.  [보물 제 409호 당진 영탑사 금동비로자나불 삼존좌상] 8각형 연꽃무늬 대좌 위로 본존불인 비로자나 부처님과 협시보살로 문수 보현 보살이 자리한 삼존좌상으로, 본존불 비로자나 부처님은 네모진 두상에 가늘고 내려뜬 눈 오똑한 코와 적은 입의 형상 기법이 고려불상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한다. 좌우 협시 보살은 모습과 손동작이 대칭으로 같으며, 화려한 모습이다. 좌대는 연곷 모양으로, 좌대에서 나온 연꽃줄기가 두 협시보살이 좌대로 활용된  특이한 형상을 보인다.

진천 : 영수사, 영산회괘불탱

아무 것도 새겨지지 않은 비만 있는 진천 연곡리 석비와  함께 진천에 있는 2개의 보물 중의 하나인 영산회 괘불탱을 지닌 영수사로 찾아간다. [두타산 영수사 일주문] 기둥이 하나인 일주문의 두타산 영수사라는 독특한 현판이 입구의 한적함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인적은 드물고  주차장 입구 쪽은 공사가 진행 중이다.  영수사는 태조 1년(918년 증통국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나 기록이 없고, 전해지는 중수기는 1624년 벽암대사가 중건하고 1831년 (순조30)승려 묘익이 중수하고, 근래 혜철 스님이 중창하여 현재에 이른다고 한다. 입구와 주차장, 일주문에 비해 사찰은 잘 정비되고, 보물을 간직할 만한 절 같지 않게, 오래지 않은 사찰이란 느낌을 갖게한다.   [괘불대] 눈에 들어 온 괘..

서울 : 세종영릉 신도비,구영릉 석물,

앞으로 들어서면 구 영릉의 석물들이 줄지어 서 있어 눈길을 끈다. [구영릉 석물] 영릉은 세종대왕과 왕비 소현왕후를 모신 왕릉으로 처음에는 서초구의 태종과 원경왕후의 능인 헌릉의 서쪽에 자리하다가, 길지가 아니라는 논의로 예종 원년에 현재 영릉이 있는 여주로 옮기게 되는 데, 이 당시 능을 치장하던 석물을 옮기기 어려워 땅에 묻었고, 이를 1970년대에 발굴하여 석양 석마 망주석, 장명등, 석인상, 혼유석, 세종대왕 신도비 등 석물을 1974년 이곳 세종대왕 기념사업회로 옮겨 왔다고 한다. [문, 무인석과 석양] 왕릉에 설치 되었던 석물 하나 하나가 그 시대의 조각의 양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랜시간 땅에 묻혀 있어 손상이 없지는 않으나, 크기나 모양이 세종대왕의 권위를 느끼게 한다. [보물 제 ..

대한민국/서울 2024.03.13

서울 : 서울 청계천 수표

사찰을 둘러보고 공덕주의 발언이 이루어지길 바라며, 사찰을 나와 다음의 목적지인 제기동에 도착하여, 일 보시는 동안 홍릉의 세종대왕 기념관으로 찾아든다. 전통혼례 식장을 찾아 바삐 혼례식을 준비하는 사람 들 사이로 보물을 찾아 본다. 기념관 옆에는 수표가 자리하고 있다. [ 보물 제 838 호 서울 청계천 수표] 수표는 물의 높이를 재는 장치로 이르는데, 기록으로는 처음은 나무로 만들어 세종 23년 청계천에 설치되고, 성종때 동국여지승람에 돌로 만든 수표에 척촌의 숫자를 새겼다고 되어 있는데, 이 수표는 조선 후기에 만들어 진 것으로 수표교 위쪽 가운데 속에 있다가, 청계천 복개시 장충단 공원으로 , 1973년 이곳으로 옯겨 왔다고 한다. 커다란 받침에 육각기둥으로 연꽃모양의 덮개를 가지고, 기둥은 위로..

대한민국/서울 2024.03.13

봉화 - 충재박물관

길을 나서서 봉화로 접어든다. 봉화의 닭실마을로 접어들며 달려가는 곳이 충재 박물관과 청암정이다. 이 곳 마을을 구경하는 것도 좋으나 오늘은 그간 문이 연이 닿지 않아 관람하지 못한 박물관으로 향한다. [중재 박물관] 박물관의 규모는 크지 않으나,충재선생에 대한 소개와 보물의 가치를 가진 유물이 잘 정리되어 궁금증을 풀어주고 있다. 충재 권벌은 조선 중종조의 학자, 관료로 이름을 떨친 자는 중허(仲虛), 호는 충재(沖齋)이며, 중종 2(1507)년에 문과 합격으로 관료생활을 하다가, 중종때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야인으로 있다가 중종 28(1533)년에 복귀되어 우찬성에 까지 오르나, 명종이 즉위하던 해의 을사사화에 삭주로 귀양갔다가 명종 3(1548)년에 그 곳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충재 선생은 기묘사화..

영주 -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

오늘은 봉화로 길을 잡는다. 가는 길목에 영주를 지나며, 신암리 마애여래삼존상 가는 길을 가르키는 고동색의 길 안내판을 발견하고 차를 돌린다. 문화재 표시판을 보고 그냥 지나는 것 은 표지판을 애써 설치한 분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길 아래 자리한 전각을 발견하니 또다른 보물을 보게 됨에 기쁨이 앞선다. 전각과 그 안의 큰 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전각안에 자리한 바위에는 멀리서 보아도 바위면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마애불이 덩그러니 내성천 상류 길 옆 들판에 자리하고 있어 그 연유가 궁금해 진다. 1980년에 보물로 지정된 사면 불상으로, 삼국시대 말기 또는 통일신라시대 초기의 불상이라한다. 본래는 바위4면에 모두 불상이 새겨 져 있었는데,세면의 불상은 모두 닳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며 삼존상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