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446

담양 : 개선사지 석등

오늘 여행의 마지막으로 보물을 찾아 나선다. 소쇄원에서 저수지 반대편에 머무는 개선사지로 향한다. 멀지 않은 길이지만 길이 잘 알려지지 않고 석등 만이 존재하여 찾는 이가 많지 않아 설렁하다. [보물 제 111 호  담양 개선사지 석등] 석등은 오랫동안 파묻혀 있던 것을  바닥을 파고 흩어진 부분을 정리하여 다시 세웠다고 하는데 1963년 보물로 지정된다. 높이 3.5m로, 아래 받침돌에는 엎어 놓은 연꽃 모양이 있고, 사잇기둥은 장고 모양이며, 윗 받침돌에는 솟은 연꽃모양이 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8각으로 창이 8면에 있다. 지붕돌은 아랫면에 낮고 널찍한 괴임이 있고, 8각의 끝부분에는 꽃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석등의 창 사이 공간에 글이 새겨져 있는데, 신라시대 석등 가운데 글씨를 새긴 유일한..

담양 : 소쇄원

명옥현을 나서서 또 다른 조선 정원인 소쇄원을 찾아 본다. 소쇄원(瀟灑園)은 양산보가 스승인 조광조가 유배되자 세상의 뜻을 버리고 은둔 생활 기간 중인 1520년부터 1557년 사이에 낙향하여 향리인 지석마을의 계곡에 조성한 곳으로, 양산보의 호가 소쇄옹(瀟灑翁)이었기에 원(園)의 이름을 소쇄원이라 한 것이라고도 한다.  ‘소쇄’는 깨끗하고 시원함을 의미한다고 한다. [소쇄원 입구의  대밭] 매표소로 부터 '더운날 집에서 기거하시지' 하는 방문에 대한 인사를 받고 나서 관람 도중 만난 이는 두어쌍 정도로, 더운 날로 인해 적막한 소쇄원을 누비는 행운을 맞는다. 양산보가  소쇄원을 조성하기 시작하고, 아들인 (자징 과 자정) 대에 고암정사와 부훤당을 갖춤으로써  별서원림으로 완성됐고, 임진왜란 때 폐허가 ..

담양 : 명옥헌

오늘은 함께 공부하는 학우들과 함께 담양으로 향한다. 대나무로 유명한 지방이지만, 메타스퀘이어 길을 달려 담양으로 들어서서 대통밥으로 여정을 달래며, 배롱나무로 그 진가를 높이는 명옥현을 찾아본다. 더운 날로 인하여 마을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마련한 주차장을 지나, 좁은 마을 길을 따라 명옥헌에 당도한다. 연못가에 자리한 배롱나무의 가지에 만개한 꽃을 달고 있지 않고 가지 끝에서만 꽃잎을 대한다. 명옥헌 원림 [사진제공 : 담양군청 녹색관광과] 정자와 배롱나무를 함께 담기가 쉽지 않은 곳이라, 마침 안내판의 이 사진에 만개한 배롱나무 꽃과 정자가 함께 담겨 있어 빌려본다. 연못 입구에 약간 높은 위치의 둔덕이 있는데, 이곳에 전망대를 세우면 사진 같은 멋진 광경을 볼 수 있을 것으로 이곳에 올때마다 아..

보은 : 복천암 수암화상탑, 복천암 학조화상탑, 순조태실

복천암을 나서 승탑으로 오르는 길 복천암의 전경을 눈에 담는다. 사찰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대부분의 승탑이 자리하는데 어디쯤인지 정확히 모르고 산길을 따라 길을 나선다.  [보물 제1416호 복천암秀庵和尙찹과 보물 제1418호 복천암 學祖燈谷和尙탑] 산길에 힘들어 할때 쯤 올려다 보인 두 승탑을 대하니 먼길이 아니지만 발이 접히지 않게 조심하며 오른 길의 수고스러움을 잊어 버린다. 더위와  땀냄새를 찾아 달려드는 산모기를 피하며, 두탑이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방문을 인사드린 후 승탑을 둘러본다. [보물 제 1416호 보은 법주사 복천암 수암화상탑] 옥개석은  옆의 학조화상탑에 비해 간략한 편으로, 탑신에'秀庵和尙塔(수암화상탑)'이라 하였고, 중대석에 成化十六年 八月日立(성화십육년팔월일립)'이라고 2행..

보은 : 법주사 복천암

수정암을 나서서 복천사를 찾아 길을 나서면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요양 차 복천암으로 온 역사적 사실에 착안하여 붙인 이름의 세조길도 함께 한다,    [복천암] 복천암은 성덕왕 19년(720)에 창건되어, 고려 태조 1년(918) 증통국사(證通國師)가, 선종 1년(1084) 도생승통(導生僧痛), 예종 2년(1107)에 자정국존(慈淨國尊)이 중수하고, 조선 세종 31년(1449)에 신미선사(信眉禪師)가 중수하였다고 하는데, 이후 영조 11년(1735)에 탁융선사(卓融禪師)가 소실된 것을 재창하여 순조 3년(1803) 취준사(就俊師)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복천암 극락전은 1976년 해체 복원하였고, 아미타불상과 후불탱화, 신미대사의 탱화가 보존되어 있으며 현판 무량수(無量壽)는 공민왕 친필로 전한다고 한다..

보은 : 수정암 석조여래좌상

보은을 찾아본다. 그동안 불편을 주던 허리와 발바닥의 통증이 어느 정도 완화되었다는 생각으로 산행이 조금은 요구되는 곳을 찾아보다가 복천암의 보물인 승탑을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속리산 법주사를 방문하면 많은 보물을 볼 수 있겠으나 너무 많은 보물에 부담이 가 부속 암자를 찾아 보려고 법주사로 향한다.  [천연기념물 보은 속리 정이품송]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 한가운데 보이는 정이품송은 나이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 14.5m, 가슴높이 둘레 4.77m이라고 한다. 세조 10년(1464)에 왕의 가마가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처진 가지로 가마가 지나기 어려울때 가지를 들어 왕이 지나도록 하였다 하고,  또 세조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

경주 : 경주 박물관 : 임신서기석, 얼굴무늬수막새, 도기 기마인물형,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녹유신장상벽전, 고선사지 삼층석탑, 성덕대왕신종

많은 문화재들이 보아 달라고 눈길을 뺏지만, 보물을 알아 보는 것도 벅차다는 생각으로 이 곳 저곳  발길을 옮긴다.  [보물 제 1411호  임신서기석] 임신서기석은 점판암제로, 한 면에 5줄 74글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비석의 첫머리에 ‘임신(壬申)’이라는 간지로 이름이 임신 서기석이라 하는데, 비문의 내용은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지키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일 이 서약을 어기면 하느님께 큰 죄를 지는 것이라고 맹세한다. 만일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우면 ‘충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한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곧 시경, 상서, 예기,춘추전을 차례로..

경주 : 경주 박물관 : 토우장식 장경호,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 금관등 유물 ,포항 중성리신라비

경주로 길을 나선다. 오랜 폭염의 날씨에 차 밖을 나서기가 두려워 경주를 들어서며 곧바로 국립 경주 박물관으로 향한다. 이러한 날씨에 시원하게 보물을 접할 수 있는 것은 박물관 관람이기 때문이다. 평일이지만 많은 관람객이 함께 한다. 방학기간의 아이 들과 그리고 눈에 띄는 많은 외국인을 통해 국립 경주 박물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무료 주차에 무료 입장으로 우리의 문화를 보전 전시한다는 것이 말없는 자존감을 갖게 하여 준다. 이 곳은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 신라천년보고, 옥외전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월지관은 오늘  보수공사로 관람이 불가하다. 이곳을 다시 한번 찾을 이유가 생긴다.먼저 신라역사관을 들어선다. 이곳은  신라의 건국과 성장, 그리고 신라하면 연상되는 황금의나라 신라, 그..

구미 : 대둔사 대웅전, 건칠아미타여래좌상, 삼장보살도, 경장

오르막 내리막을 통해  복우산 북쪽 기슭에 가파른 길을 오르면 동쪽으로 자리한  대둔사가 자리한다.  대둔사는 신라 눌지왕 30년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전하는데, 몽고침략시 불에 타서 충렬왕때 다시 지어졌다고 하며, 조선 선조39년에는 사명대사가 절을 크게 짓고 승군이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축대를 쌓아 지대를 높게 한 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사찰 앞 에 주차장이 공사 중 이지만 가파른 길을 사찰 앞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보물 제1945 호 구미대둔사 대웅전] 대웅전 앞은 돌로 축대를 쌓아 계단을 만들었고, 공포가 멋지게 자리한 다포식 팔작지붕이 커다란 관을 쓴 듯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 옆면] 대웅전의 규격적이며 화려한 공포를 지탱하여 주는 듯한 활주가 건물을 안정감 있게..

상주 : 오작당

구미로 들어서기 전 상주를 통과한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웃 도시나 마을을 가려면 굽이 굽이 산길로 재를 넘어가야 한다. 요즘 처럼 터닐이 없던 시절 발품 팔아 오랜 시간을  힘겹게 넘을 길을 쉬통과하고, 포장된 도로를 따라 주변을 둘러보며 편히 넘을 수 있으니, 그리고 목적지 까지 빠르게 넘어갈 수 있으니 옛날 사람들 보다 수명 만이 길어 진 것 이 아니라 장소의 이동에 소비하는 시간은 수백, 수천배로,  삶이 연장 된 느낌이다. 구미로 가는 상주를 통과 하는 길에 상주 오작당이 있어 둘러 본다. [상주 오작당]  안내문을  통하여 이곳의 내력을 알아 본다. 오작당은 입재 조대윤의 종가로 원래는 40여칸 이었는데, 1781년 부분적으로 헐어내고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집안에 설치하는 사당인 가묘가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