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경상북도 70

경주 : 경주 박물관 : 임신서기석, 얼굴무늬수막새, 도기 기마인물형,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 황룡사 구층목탑 금동찰주본기, 감은사지 서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녹유신장상벽전, 고선사지 삼층석탑, 성덕대왕신종

많은 문화재들이 보아 달라고 눈길을 뺏지만, 보물을 알아 보는 것도 벅차다는 생각으로 이 곳 저곳  발길을 옮긴다.  [보물 제 1411호  임신서기석] 임신서기석은 점판암제로, 한 면에 5줄 74글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비석의 첫머리에 ‘임신(壬申)’이라는 간지로 이름이 임신 서기석이라 하는데, 비문의 내용은 "임신년 6월 16일에 두 사람이 함께 맹세하여 기록한다. 하느님 앞에 맹세한다. 지금으로부터 3년 이후에 충도를 지키고 허물이 없기를 맹세한다. 만일 이 서약을 어기면 하느님께 큰 죄를 지는 것이라고 맹세한다. 만일 나라가 편안하지 않고 세상이 크게 어지러우면 ‘충도’를 행할 것을 맹세한다. 또한 따로 앞서 신미년 7월 22일에 크게 맹세하였다. 곧 시경, 상서, 예기,춘추전을 차례로..

경주 : 경주 박물관 : 토우장식 장경호, 금관총 천마총, 황남대총, 금관등 유물 ,포항 중성리신라비

경주로 길을 나선다. 오랜 폭염의 날씨에 차 밖을 나서기가 두려워 경주를 들어서며 곧바로 국립 경주 박물관으로 향한다. 이러한 날씨에 시원하게 보물을 접할 수 있는 것은 박물관 관람이기 때문이다. 평일이지만 많은 관람객이 함께 한다. 방학기간의 아이 들과 그리고 눈에 띄는 많은 외국인을 통해 국립 경주 박물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된다. 무료 주차에 무료 입장으로 우리의 문화를 보전 전시한다는 것이 말없는 자존감을 갖게 하여 준다. 이 곳은 신라역사관, 신라미술관, 월지관, 신라천년보고, 옥외전시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월지관은 오늘  보수공사로 관람이 불가하다. 이곳을 다시 한번 찾을 이유가 생긴다.먼저 신라역사관을 들어선다. 이곳은  신라의 건국과 성장, 그리고 신라하면 연상되는 황금의나라 신라, 그..

구미 : 대둔사 대웅전, 건칠아미타여래좌상, 삼장보살도, 경장

오르막 내리막을 통해  복우산 북쪽 기슭에 가파른 길을 오르면 동쪽으로 자리한  대둔사가 자리한다.  대둔사는 신라 눌지왕 30년 아도화상이 지었다고 전하는데, 몽고침략시 불에 타서 충렬왕때 다시 지어졌다고 하며, 조선 선조39년에는 사명대사가 절을 크게 짓고 승군이 머물기도 했다고 한다. 축대를 쌓아 지대를 높게 한 곳에 사찰이 자리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사찰 앞 에 주차장이 공사 중 이지만 가파른 길을 사찰 앞까지 차로 이동이 가능하다.    [보물 제1945 호 구미대둔사 대웅전] 대웅전 앞은 돌로 축대를 쌓아 계단을 만들었고, 공포가 멋지게 자리한 다포식 팔작지붕이 커다란 관을 쓴 듯한 느낌을 준다.   [대웅전 옆면] 대웅전의 규격적이며 화려한 공포를 지탱하여 주는 듯한 활주가 건물을 안정감 있게..

상주 : 오작당

구미로 들어서기 전 상주를 통과한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이웃 도시나 마을을 가려면 굽이 굽이 산길로 재를 넘어가야 한다. 요즘 처럼 터닐이 없던 시절 발품 팔아 오랜 시간을  힘겹게 넘을 길을 쉬통과하고, 포장된 도로를 따라 주변을 둘러보며 편히 넘을 수 있으니, 그리고 목적지 까지 빠르게 넘어갈 수 있으니 옛날 사람들 보다 수명 만이 길어 진 것 이 아니라 장소의 이동에 소비하는 시간은 수백, 수천배로,  삶이 연장 된 느낌이다. 구미로 가는 상주를 통과 하는 길에 상주 오작당이 있어 둘러 본다. [상주 오작당]  안내문을  통하여 이곳의 내력을 알아 본다. 오작당은 입재 조대윤의 종가로 원래는 40여칸 이었는데, 1781년 부분적으로 헐어내고 지금은 안채와 사랑채, 집안에 설치하는 사당인 가묘가 남..

경주 : 주상절리, 감은사지

경주 양남 주상 절리를 지난다.   [경주 양남 주상절리]    [경주 양남 주상절리]  바닷가에 누운 기둥에 쓰면 좋을 듯한 모양의 바위가 눈길을 잡는다. 가는 길에 감은사지를 들러본다. 마침 해가 넘어가는 풍경을 담을 수 있을 것 같아 당도하니, 석양이 들기 시작하는데 새털 같은 구름이 드리워져 몽환의 분위기가 눈을 즐겁게 한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 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고 한다. 문무왕은 살아 절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아들인 신문왕이 뜻을 이어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국보 제 112호 경주 감은 사지 동서 삼층석탑] 신문왕 2년에 세워 진 감은..

청송 : 백석탄

숨은 비경인 청송호 상하부 댐을  둘러보고 이내 백석탄을 길을 나선다.  [백석탄] 계곡에 자리한 백석탄은 백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를 닮은 모습이라 소개하는데,  눈부시도록 하얀 빛을 내며 서있는 바위들이 나의 눈에는 빙산처럼 느껴진다. 강원도 영월의 요선정 아래의 바위에서 본 돌개구멍에서 느낀 신비함에 하얀 색상의 황홀감이 더해진 느낌이다. 계곡 따라 멋짐을 즐기다 차로 돌아온다. 추위와 오랜 발걸음이었지만 눈이 느낀 즐거움으로 대신 해본다. 백석탄의 밝은 색은 석영 장석등 밝은 광물이 모여서 된 암석 때문이라 한다.  [만안 자암단애] 이곳 청송은 세계 유네스코 지질 공원이 있는 곳이다. 집으로 향하는 길에 만안 자암단애를 보게된다. 철성분이 많아 붉은 절벽이란 자암단애라 부른다. 안동의 길안으로 가..

청송 : 송소고택

청송으로 들어선다. 년말을 대부도에서 해넘이을 친구 들과  보낸 것이 기억나, 새해 첫 주 여행은  해돋이를 위한 동해 방문을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는 중, 낯이라는 생각으로 청송에서 내려서다 덕천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600여년 역사의 흔적과 정취가 살아있는 충효마을로 청송 심씨 본행이자 집성촌이며, 배산임수형의 연꽃마을 인 탁천마을 엔 99칸 심부자댁인 송소고택, 찰방공 종택, 송정고택 등이 있는 고택이 잘 정돈 된, 국제 스로 시티 청송에 어울리는 명품고택과 한옥스테이를 운영하는 국제슬로시티 마을로 선정된 곳으로,  마을내 자전거 타기와 둘레길 산책 원두막 및 천영염색 등 많은 체험거리를 즐길수 있는 곳이라 한다.   [경의재와 신도비]  고려국 전리판서 악은 심선생신도비라는 비와  경의재가 마을 ..

안동 : 청원루

마을 초입에 자리 한 보물 청원정이 보인다. [보물 제 2050호 청원루] 안동 청원루(安東 淸遠樓)는  풍산읍 소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건축물로, 비교적 최근인 19년 12월에 여러 누정과 함께 보물 제2050호로 지정된다. 조선 중종 때 김번 선생이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100여 년이 지난 1646년(인조 23년)에 청음 김상헌 선생이 누각으로 다시 지었다고 한다.김상헌은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저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 말동 하여라" 라는 시를 남긴 분으로, 병자호란때 인조의 굴욕적 굴복을 반대한 척화주전론의 우두머리로서, 청군의 지원병 요청을 반대하는 상소로 청나라에서 6년 동안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뒤 이 누각을 지었는데, 이름도 청나라를..

안동 : 소산마을

안동으로 향한다. 세월이 흘러 어머니 첫 기일이 되어  묘소를 찾아 보는 길이다.  많은 것 들이 떠오르지만, 그 간 잊고 지낸 것을 되새기며, 사람은 그저 곁을 내주다 서서이 지워지는 것인가 생각해 본다.마침 하회 별신굿 탈놀이장을 지나며 열린 문으로 들어서서 놀이에 함께 자리해 본다. 거의 끝날 무렵의 입장 이어서 인지 함께 흥이 나기 이전에 끝이 나서 아쉽다. 이 전 에 경남 고성의 오광대놀이  보존을 위해 노력과 헌신으로  애 쓰시는 분들과 인연이 닿아,  수고로움과 어려움을 본 일이 있었는데, 이곳도 전통의 문화재 보전을 위해 애쓰시는 모습에 다음에는 처음 부터 자리하여 관람해 보기로 한다. [무형 문화재 하회별신굿 탈놀이] 하회마을을 나와 풍산읍으로 이동하며 소산마을을 찾아본다. 이전에 인근의..

봉화 : 봉성리 석조여래 입상

봉성리에 자리한 마애불을 찾아 본다. [봉서루] 봉성리로 들어서는 초입의 봉성리 시장 안의 봉서루는 원래는 봉성면사무소 자리에 있었던 봉화현 관아 건물의 일부였는데, 구한 말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었다고 한다. 조선 영조 14년(1738)에 봉화현감 이광직이 지은, 현내의 유현들이 집회하여 교류하였던 장소라고 하며 동헌문루로 기록되었다 한다. 과거 봉서루 앞쪽에 연못이 있었다고 하며 건물은 ‘ㄱ’자형으로 좌측 3칸은 일자형 단층건물이며 우측 2칸은 중층형이다. 마을 통하여 길을 들어서 가면 길옆에 자리한 불상을 맞이한다. [봉화 봉성리 석조여래 입상] [봉화 봉성리 석조여래 입상] 유형 문화재 봉성면 봉성리에 있는 불상으로, 거대한 암벽바위에 불상의 몸을 새기고 머리는 다른 돌로 만들어 올렸다. 이는 고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