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경상남도 79

고령 : 장기리 암각화

고령을 지나며 이 곳의 자랑 거리인 장기리의 암각화를 만나 본다. 네비를 따라 들어 온 암각화 공원은 도로 곁에 빗물 침식을 막아주는 채양 건물 아래 자리하고 있다. 안내판을 보며 보물의 됨됨이를 알아 본다.  [보물 제 605호 고령 장기리 암각화] 빗물침식을 방지하기 위한 시설 아래에는 청동기 시대 만들어진, 사람들이 자신의 염원을 신성시 하던 바위에 새긴 암각화가 자리한다. 낙동강의 지류인 회천모듬내에서 약 200m 떨어진 속칭 '알터마을'입구에 위치하고 있다. 제방을 만들기 이 전에는 유적 바로 앞까지 물이 들어 왔다고 하며, 발견 당시에는 앞쪽에 작은 웅덩이도 있었다고 한다.  바위면의 규모가 높이 3m, 너비 6m가량으로 남서쪽을 향해 있다고 한다. 주변에  작은 연못이라도 만들어 바위가 비쳐..

합천 : 영암사지 , 석등, 귀부, 삼층석탑

소목리의 정자  길을 나서 영암 사지로 가는길에 황계폭포에서 황강으로 들어가는 계류가 이룬 절벽이 눈길을 잡아 차를 멈춘다. 황매산 군립공원을 지나 이 곳 황매산의 남쪽 기슭로 찾아든다.     [영암사지] 영암사는 처음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모르나, 고려 현종 5년(1014)에 적연선사가 이 곳에서 83세에 입적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또한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홍각선사비의 조각 중에도 ‘영암사’라는 절의 이름이 보이는데, 홍각선사비가 886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영암사의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고 한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쌍사자석등(보물)·삼층석탑·귀부, 당시의 건물 받침돌·각종 기와조각 들이 남아있다. 먼저 영암사지의 왼쪽 편에 독립적으로 자리한 2..

합천 : 함벽루

합천으로 길을 들어선다.  오늘은 함벽루와 쌍사자 석등이 있는 영암사지를 찾아보려 가는길로 먼저 함벽루를 찾는다. 탁트인 강변에 자리하여 시원한 강바람을 즐긴 옛 사람의 풍류를 넘겨 짐작해 보며 눈앞의 함벽루에 이른다.  [함벽루] 함벽루는 1321년 고려 충숙왕 대에 당시 합주지주사 김영돈 (1285-1348)이 처음 창건하고,  이 사실을 기문으로 적은 이는 안진이라는 분 이라 한다. 이 누각은 여러 차례에 걸쳐 중건 되어 지금에 이르렀다고 하며, 당대의 문인인 이황(李滉), 조식(曺植), 송시열(宋時烈) 등과 같은 조선시대 최고 지식인 들의 글이 누각 내부 현판에 걸려 있다.  뒤 암벽에 새겨진  함벽루라는 글은 송시열의 글씨라 한다.  강가에 지어져 비가 내리면 누각 처마를 통해 빗물이 황강으로 ..

하동 : 최참판댁

하동을 지난다. 하동에는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 『토지』, 주인공인 최치수 및 최서희 일가와 주변 인물들의 생활공간을 재현한 최참판 댁이 있다. 하동이 악양면 평사리 일대에 최참판댁을 건립하여 문화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1997년 6월 대하소설 『토지』 최참판댁 건립 추진, 1999년 12월 착공, 2년 뒤인 2001년 2월 준공하였다고 한다.  [최참판댁] 최참판이 나무그늘아래 책읽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사랑채로 들어가는 중문] 여러채로 고가의 멋을 충분히 살리고 살림살이도 잘알려주는 공간이라 생각된다.   [최참판 댁 사랑채] 사랑채의 루상의 마루에 앉아 주변의 한옥이 보이는 옛스러운 멋을 음미한다. 나오는 길 멀리 들판을 바라보며, 소설의 내용보다는 너른 들을 내려다 보..

남해 독일마을, 용문사

창선 삼천포 대교를 건너 섬 아닌 섬 남해의 독일마을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 마을 을 산책하여 본다.   [독일마을] 파독으로 간호사와 광부로 샐활하다 조국으로 귀국하여 여생을 보내는 분들이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 독일식 가옥을 짓고 집성촌을 이루어 만들어진 곳 이어선지 유럽풍의 생활을 느끼게 한다.아침운동을 나선 주민어른과 의 아침 인사 후 만남의 시간을 가져본다.      이 곳을 알리는 파독 전시관 문이 열리지 않아 접하지 못하고 발실을 돌리게 된다. 고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남해 독일마을에서 보내시는 파독광부의 광산에서 사용했던 작업도구와 작업복, ‘코리아 엔젤’이라는 찬사를 들어온 파독간호사의 병원생활도 생생히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는 삶과 애환, 그 속에서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던 고국에..

사천 선진리 왜성

오늘은 남해를 방문한다. 해외거주 형님 내외와의 여행 길을 함께 한다. 숙소인 남해에서 일박 후 동이던 서던 바닷길을 따라 이동 할 생각으로 나선 길에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천의 선진리 왜성을 들려본다. 몇번의 방문은 이곳에 만연한 벛꽃을 보기 위해 들르던 곳이었지만 오늘은 그간 단장된 모습을 보기 위해 들른다. 새로이 주차시설도 잘 되어있어 벗꽃이 한창일때는 많은 사람이 다녀 갔을듯 한데 오늘은 한두팀 정도 보인다. [사천 선진리 왜성] 주차장으로 부터 언덕을 오르니 왜성이 자리한다.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이 시작되고, 남원성 전투 이후  북상하던 일본군이 명량 해전 패배로 북상이 좌절되어서, 울산, 순천, 사천 등지에 왜성을 쌓고 장기 농성을 위해 축조 된 성이라 한다. 우리의 성은 유사 ..

울주 - 청송사지 삼층석탑, 부도탑

망해사 사찰을 둘러보지 못하고 서둘러 청송사지로 향한다. 한 군데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바삐 서둘러 청송 마을에 당도한다. 찾아가는 청송사지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 하는데, 이곳 청송마을 전체가 청송사 경내라고 전해지며, 탑에 머지 않은 곳에 작은 청송사가 자리한다. 원래 매우 큰 사찰이라 신동국여지 승람에 수록되어 있으나 1810년 무렵 폐사한 것으로 본다. [청송사] [보물 제 382호 울주 청송사지 삼층석탑] 남암산의 청송사 절터에 있는 삼층석탑으로,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세운 것으로, 기단은 각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기고, 마감돌 위에 다른 돌로 2단의 모난 괴임돌을 끼워서 각각 윗돌을 받치도록 하였다. 1층 몸돌이 길고 크며, 2층 몸돌은 급격히 줄어들은 모양으로 체감..

울주 - 망해사지승탑

울산에는 보물지정이 시작된 1963년 부터 보물로 지정되어 온 것이 여럿 있다. 이러한 것들 대부분이 사지에 있는 보물이다. 둘러 본 곳 외에 방문하는 곳은 망해사지와 청송사지인데, 울산에 왜의 침입이 많았는지 사지만 남아 있는 곳이 많고, 다른 유물이 없이 유독 석조물인 탑과 승탑 등이 남아 과거의 사찰이 존재를 알리고 있다. 많은 문화재가 사라진 것을 안타까워 하며 울주 망해사지 승탑을 찾아본다. [망해사지] 차는 사지 아래 망해사 사찰 입구까지 오를 수 있어, 차를 대고 사찰 입구 옆의 길을 따라 절 뒤편으로 돌아가면 망해사지에 도착한다. 승탑이라 사찰내가 아닌 뒤편에 있는가 보다 생각하며, 두개의 승탑이 웅장하게 자리한 사지에 도착한다. 망해사는 삼국유사의 창건설화에 의하면, 신라 헌강왕이 울산을..

울산 - 박물관

울산 박물관으로 들어 선다. 이 곳은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문화재의 소개와 울산의 문화와 산업발달사를 소개하는 종합도시역사박물관으로, 선사시대 해안가 사람들로 부터 산업역군들의 땀방울의 이야기를 동시에 경험 할 수 있는 곳이라 한다. [박물관 외관] 건물 외벽에는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그려져 있고, 역사관에는 선사시대 부터 일제시대 까지의 유물이 장소, 시대 별로 구분 하여 전시되어 있다. [울산 박물관 전시물] 둘러보는 역사관 홀의 중앙에 실체를 보고 싶던 십이지상 사리탑이 자리한다. [보물 제 441호 울산 태화사지 십이지상 사리탑] 태화사는 선덕여왕때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가져온 사리를 모시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18세기 중반 이전 폐사된 사찰이라 한다. 1962년 태화동의 절터에서 발굴된 것으로,..

울주 - 석남사승탑

석남사로 향한다. [석남사 일주문] 큰 사찰을 찾아드는 길은 각종 오래 된 나무로 된 길이라, 걷는 동안 마음의 평온을 느끼게 된다. 석남사는 신라 헌덕왕에 도의 국사가 건립한 사찰로 보물 제 369호 인 승탑과 삼층석탑, 돌수조의 문화재가 있는 사찰이다. 계곡의 풍경을 즐기며 옆길로 찾아든다. [대웅전 과 석탑] 대웅전 앞 석탑은 스리랑카에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셔와 봉안하기 위에 1973년에 지은 것이다라 한다. [대웅전] [삼층석탑] 석남사 삼층석탑은 극락전 앞에 자리하고 있으며, 그 높이는 2.5m이다. 원래 대웅전 앞에 있었으나, 197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통일신라시대의 석탑으로 체감미가 우수하고, 정상에는 노반석, 앙화, 보개 등을 갖추고 있으며, 노반석 이상의 부재는 후대에 보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