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충청남도 61

당진 : 안국사지 매향암각

이곳에는 당진 안국사지매향암각이 있는데, 불상의 뒷편에 눈에 들어오는 바위는 자연석의 통바위로, 높이 2.93m, 길이 13.35m, 폭 2.5m이라 한다. 형태가 배모양 같다 하여 '배바위' 또는 고래모양이라 하여 '고래바위' 또는 베틀에 딸린 북모양이라 하여 '북바위'등으로 불리우며 동쪽으로 머리를 두고 있다. 이곳에 매향 내용이 암각되어 있다고 한다.  [배바위] 매향비는 매향 의식을 행한 시기, 주체, 향을 묻은 곳을 표시한 비인데, 별도로 비석을 만들지 않고 자연적으로 생긴 바위에 글씨를 새기기도 하며,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에 특히 유행하고, 향촌 공동체에서 주도 하였다고 한다. 매향 의식은 미래의 부처인 미륵불이 와서 중생을 제도할 때 교화를 받아 정토에서 살고자 하는 염원이 담긴, 현세의..

당진 : 안국사지 석탑, 석조여래 삼존입상

오늘 보려 한 안국사지를 찾아 길을 옮긴다.    [안국사지] 안국사지는  안국산(일명 은봉산)에 위치한 폐사지로, 안국사는 창건된 해가 분명하지 않으며, 절 안에서 발견된 유물들을 통해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조선시대에 폐사되었던 것을, 1929년 승려 임용준이 주지가 되어 다시 일으켜 세웠으나, 곧 다시 폐사되어 현재는 터만 남아있다고 한다. 절터에는 탑과 석조여래삼존입상이 보물로 보전되고 있다.    [보물 제 101호 당진 안국사지 석탑] 안국사지 정면의 이 탑은 안국사지 있는 탑으로, 탑은 아래부분인 기단부가 다른 탑들에 비해 간단하고, 2층 이상은 탑 몸돌이 없어진 채 지붕돌만 포개져 있다. 탑신은 유일하게 1층 몸돌만이 남아있는데, 각 귀퉁이에 기둥을 새기고 한 면에는..

당진: 면천향교

당진의 보물을 찾아 나서 본다. 가는 길목에 있는 면천의 향교를 방문하고저 길을 벗어난다.    [골정저수지] 입구에 자리한 골정저수지에 아직 연꽃을 피워내지는 못하지만 한적한 풍경을 보여준다.    [면천 향교] 홍살문을 앞 세우고 하마비가 세워진 향교에 당도한다.    [면천 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으로, 향교를 세운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태조 1년(1392)에 세웠다고 전한다. 건물 배치는 앞쪽에 강당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으며, 뒤쪽에 제사지내는 공간으로 대성전과 동무·서무가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를 따르고 있다.   [명륜당] 들어가서 본 모습이 아니라 자세히 본 모습은 아니다. 잘 보존된 모습으로 앞이..

아산 : 온주아문, 동헌

[온주 아문] 온주아문 및 동헌은 조선시대 온양군에서 관아로 쓰인 건물이라 한다. 이 문은 조선 고종 8년 (1871년)에 다시 세운 것이라 하며, 여러차례 변경되다가 1993년 수리 복원하였다고 한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문위의 누각 건물로, 기단위에 높이 1.5m높이의 주춧돌을 넣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만든 모습이다. 온주의 뜻은 신라문무왕 3년에 온양군을 '온주'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 듯 하다고 안내되어 있다.  [동헌] 온주아문 안에 자리한 동헌은 지금은 들어가지를 못한다. 매장 문화 발굴작업 중이라 하여, 담 밖에서 안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앞면 6칸, 옆면2칸의 홑 처마 팔작지붕으로, 길게 다듬은 받침돌을 쌓아 기단을 만들고, 주춧돌을 올려 사각기둥을 세운 이건물은 조..

아산 : 읍내동 당간지주

[보물 제 587호 아산읍내동 당간지주 ] 읍내에 자리한 돌기둥 두개는 1971년 보물로 지정된 당간지주이다. [보물 제 537호 아산읍내동 당간지주] 문화재 여행 중에 늘 궁금한 것이 당간지주의 보물 지정 기준이었는데, 오늘도 의문만을 가지고 지주를 살핀다. 높이 410cm, 너비,55cm, 두께39cm 라고 한다.기둥머리가 완만한 곡선 형태를 이루고, 지주 안쪽에는 홈이 있다. 기둥 바깥쪽은 모서리를 깍아 세로로 줄무늬를 새긴 효과를 나타낸다. 지주가 있던 이 위치를 원래 자리로 여기고,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작은 공원 옆의 팔각정에서 바라보며 옛날 절의 모습은 어떠 했는지 상상을 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원래는 집도 없는 곳에 자리했던 지주인데, 이제는 아파트를 배경으로 예전엔 그 ..

아산 : 평촌리 석조여래 입상

아산을 향해 길은 나선다. 오늘은  이즈음 다시 영화로 재조명 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보물을 찾아보러 현충사로 길을 잡는다. 당도한 현충사에서 마주한 안내문에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 2023년 9월 부터 2024년 2월 까지 임시휴관이라 안내판을 접한다. 아쉬움에 다시 방문을 기약하며 문앞에서 돌아 나온다. [현충사] 이곳 아산에 있는 보물을 찾아 가는 길이다. 원래 이곳은 오랜 폐사지 이었는데 주민이 미륵불이 있어 미륵골이라 불리던 곳에 지금은 용담사가 세워져 있다. 2004년 충청남도 전통사찰로 지정되었 한다. [용담사 대웅전] 적으나마 새로이 불사를 이루는 용담사 입구의 오른쪽에  1971년 보물로 지정된 석조 여래상이 자리한다. [보물 제 536호 아산 평촌리 석조여래입상] 통일 신라의 특징을 가..

당진 - 신암사 금동여래좌상

신암사로 향한다.   [ 신암사] 어렵게 찾은 신암사는 좁은 농로 길을 따라 들어가는 외진 곳에 자리한 찾기 힘든 작은 사찰이다. 신암사는 고려 충숙왕때 능성 구씨의 4대손인 구예가 가교리에 터를 잡으며 지어진, 구예의 부인 아주 신씨가 남편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하여 세운 절로, 원래는 구룡사라 하였었는데 후에 신씨를 기리는 뜻으로 신암사라고 절 이름을 고쳤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보물 제 987 호 당진 신암사금동여래좌상] 1989년 보물로 지정된 여래좌상은 전체적인 모습이 청양 장곡사 불상과 유사하다고 하는데,  당당한 모습이 무게감을 주며, 미소를 담고 있어 친근감을 주고 있다. 상체는 장대하며 볼륨감 있지만 부드러운 가슴을 가지고 있고, 하체는  넓으며 무릎의 근육이 표현 되어 있는 안정된 모습..

당진 - 면천읍성

영탑사를 나서서 당진 신암사의 금동여래좌상을 찾아 가는길에 당진 면천 읍성을 들러본다.   [면천읍성 남문] 세종 21년 11월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은 평지 읍성이라 한다. 조선 후기까지 면천의 군사 및 행정 중심지의 기능을 한 곳이다.  성벽은 자연석으로 외부는 돌로 내부는 돌을 채운 후에 흙으로 덮었다. 성벽의 둘레 길이는 1.366m 이며, 면천의 남문은 옹성형태로, 18세기 이후 성의 기능을 상실한 후는 누각이 허물어지고 옹성을 따라 집이 지어졌으나, 2009년 이후 시작된 복원 정비 작업으로 원기루등 누각을 비롯한 남문의 시설을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하였으며, 2014년 완료 되었다 한다. 이 성이 왜구를 막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에 잠시 의아해 하며 자리를 떠나 신암사로 향한다.

당진- 영탑사 칠층석탑

불상을 모신 바위가 연이어 산위로 뻣어난 바위 위에는 칠층 석탑이 모셔져 있다. 유리광전의 바위와는 떨어져 있는 듯 보이고, 벽으로 분리되어 있으나, 암반은 같은 것이 아닌가 싶은 모습이다.   [영탑사 칠층석탑] 바위를 기단 삼아 암반위에 자리한 칠층석탑은 5층만 남아있던 것을 1911년 7층으로 복원하였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7층으로 제작하여서 인지 넓지 않고 긴형태이나 바위와의 조화가 어울리며, 낙수면이 직선적이고, 처마는 약간의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몸돌과 지붕돌이 하나로 되어 있다. 이 곳에 탑이 세워지게 된 내용은 두가지로 전해진다고 하는데, 하나는 1789년 지윤 스님이 유리광전을 보수할 때 5층탑을 세웠고, 탑을 기리기 위해 영탑사라 이름 지었다는 것과 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쓰기..

당진 _ 영탑사 약사 여래상

[유리광전] 돌 축대를 쌓아 올려 지어진 유리광전으로 향한다. 안에는 천연 바위에 여래상이 모셔져 있다.  [영탑사 약사 여래상] 법당 안에 자리한 큰 바위에 모셔진 불상에 조명이 비추어 신비감을 주고 있으며, 독특한 형상의 자연 바위에 듬직한 부처상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힘을 느끼게 된다.   [영탑사 약사 여래상] 고려시대 만들어 진 것으로 알려진, 동쪽 정유리세계에 살면서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재앙을 없애며, 현세의 행복함과 즐거움을 이루게 하는 부처인 약사 여래상이다. 불상은  높이 3.5m 의 좌불로, 하반신은 잘 보이지 않고 얼굴 부분은 뚜렷하다. 세련미는 없으며, 친근감이 드는 고려시대 지방화 된 불상양식으로 보인다. 고려말 무학대사가 사찰을 둘러보니 기이한 바위가 빛을 내고 있어, 이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