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경상북도

성주 - 세종대왕자 태실, 선석사, 태실 박물관

如一 2023. 10. 8. 20:32

성주 대왕 태실로 향한다. 입구에서 더운 날의 뙤약볕에서 이 곳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여 주신 도씨 성의  해설사로 부터, 이곳이 명당이며, 태실의 유래와 역사이야기 그리고 태실을 없애는 일제의 만행으로 부터 이 곳을 지켜 내오신, 성함을 기억나지 않는 도씨 성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아룰러 성주가 우리 만이 갖는 장태문화를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하기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알게 된다.  

이곳 성주에서는 '생명이 깃든 태실, 희망 충전 성주 여행' 이라는 기치아래 이곳 태실이 문화유산으로 등재 되기를 바라며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태봉으로 오르는길]

 

주차장서 태봉을 오르는 계단 길을 걸어 올라 본다. 이곳은 픙수 지리상으로 좌청룡 우백호 형상의 선석산과 가운데 도톰한 알봉인  태봉 그리고 앞에 자리한 연못인 인촌지 등이 좋은 기를 많이 받을  수 있는 명당이라고 하여 걸어 오르며 많은 기를 받아본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胎峰) 정상에 있으며,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을 말한다. 세종대왕자태실은 조선초기 태실 형태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며,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곳이며,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와 함께 왕실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사적 세종대왕자 태실]

 

전체 19기 중 14기는 조성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는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다가, 1977년 복원시 찾아 내어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 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 두었다.

 

[ 손인 단종의 비]

 

일반 왕자와 왕의  태봉은 한글로는 같지만 일반 왕자는 봉우리 봉자를 (胎峯) 임금이 되면 가공비 들레석을 설치하고 (胎封) 이라 구분한다고 한다.

19왕자 중 첫 아들인 문종은 제외되고, 원손인 단종의 태실이 자리한다. 이곳 세종대왕자 태실은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태봉은 당초 성주 이씨의  이장경의 묘가 있었는데,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그의 묘를 옮기고 태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한편 1977년 태실에 대한 보수시 분청인화문대접·뚜껑, 평저호 및 지석(誌石)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선석사]

 

선석사(禪石寺)는 신라 시대인 의상이 창건한 화엄 십찰중의 하나로, 처음에는 신광사로 자리는 현재보다 서쪽에 있었는데, 고려 말 1361년(공민왕 10)에 승려 혜근이 신광사의 주지가 되어 절을 지금의 자리로 옮기는데, 터를 닦는 중 큰 바위가 나와 ‘닦을 선(禪)’ 자와 ‘돌 석(石)’ 자를 붙여 선석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세종 대왕자 태실이 있는 태봉에서 인근한 선석사는 왕자의 태실(胎室)을 수호하는 사찰로 지정되어, 영조가 어필을 하사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선석사 법당의 삼존불]

 

선석사에는 보물로 지정된 괘불탱을 가지고 있다.

 

[보물 제 1608호 선석사 영산회괘불탱]

 

1702년(숙종 28)탁휘(卓輝)·법해(法海)·설잠(雪岑)·성징(性澄) 등이 제작된 괘불탱이다.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화면의 상단에 아난과 가섭 제자가 있으며, 좌우협시는 본존불보다 한 발짝 앞서  공간감과 입체감을 드러내고 있다. 본존 석가여래의 수인은 오른손을 어깨로 들어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그림에 “영산회도일부봉안(靈山會圖一部奉安)”이라고 기록되어, 선종의 염화시중과 조선시대에 성행한 선교합일(禪敎合一) 표현한 것으로, 염화시중의 내용을 표현한 불화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라고 한다.

선석사입구에는 태실문화관이 있다.  생명존중 정신이 깃들어 있는 "태실의 고장" 성주를 소개하고 조선왕실의 출산의례, 태실의 조성, 태실의 구조등 태실과 관련된 내용을 전시하고 있다. 

 

 [태실 박물관 전시물]

 

'장태'(藏胎)라는 의식행위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고려사 '지리지'에  "지금의 진주(鎭州·충북 진천)에서 김유신이 태어나자 그의 태를 높은 산에 묻었다. 지금 태령산(胎靈山)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라는 최초의 기록이 있다. 

 장태 습속은 태를 불에 태우거나[燒胎], 태를 땅에 묻거나[埋胎], 태를 물에 흘려보내거나[水胎], 태를 말려서 보관하는 것[乾胎] 등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행해졌는데, 그중 우리나라에서는 독특하게 태실(胎室)을 조성하는 독창적인 문화가 왕실에서 행해진 것이다. 이곳에는 태를 받아서 모시는 모든 것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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