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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 장정리 오층석탑, 장정리 석조여래 입상

자리를 옮겨 장정리로 향한다.  [보물 제 10호 강화 장정리 오층 석탑] 좁은 마을길을 돌아 낮은 언덕 중턱에 위치한 절터가 보인다. 그 규모를 알 수가 없으며, 봉은사지로 추정 하나 가람을 배치한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보물 제 10호 강화 장정리 오층 석탑] 손상이 많고 부재도 없어진 모습으로 자리한다. 기단의 네 모서리에는 기둥모양이, 탑신부은 1층 몸돌만 두 장의 돌로 짜여있고, 나머지는 각각 하나의 돌이다. 1층 보다 2층 몸돌의 크기가 급격히 줄고, 지붕돌은 밑면에 1층은 4단, 나머지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추녀밑은 네 귀퉁이가 약간 치켜진 듯 한데 추녀마루가 깨어져, 정도를 알 수 없다. 신라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아 변형된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는 작품으..

강화 :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 월곶돈대, 연미정

강화로 들어서 본다. 이번 발길은 강화군 장정리의 석탑과 석조여래 입상 보물을 찾아보기 위함이나, 다리를 들어서며 바닷가에 설치된 보를 보지 않을수 없어 찬찬히 섬의 해안길을 따라 돌아본다. 강화도에는 5개의 진과 7개의 보, 53개의 돈대가 섬전체를 에워싸고 있다고 한다.  [초지진] 강화로 들어서며 1656년 강화유수 홍종보가 초지진과 이때 심은 것으로 추정된 400여년 된 소나무의 위용을 보여준다.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군에, 1875년  운요호 사건시 일본군과의 포격전에  무너졌다고 하는데, 이때의 포격에 의한 상처가 소나무에 남아 당시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덕진진] 덕진진은 방어 요충지며, 수영에 속하는 진으로 덕진돈, 남장포대 등이 이곳의 관활이었다 한다. 돈대와 포대는 조선 숙종5년..

순천: 팔마비, 순천만, 낙양읍성

변함없는 인간의 삶이라 생각하며 발길을 순천만으로 돌린다. 이곳 순천만 갈대밭의 총 면적은 약 160만평에 달한다고 한다.  새로이 올라온 갈대숲 사이에 난 데크 길을 거닐며 망둥이도 게의 모습을 찾는 재미로 발길이 자주 멈친다. 어느덧 용산 전망대로 가는 산길로 접어들어 진다.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전망대에 이르는데, 보수 공사로 인하여 중간 지점의 전망대에서 길이 막힌다.  아쉽지만 이 곳에서 순천만의 모습을 눈에 담아본다. 이곳은 석양이 멋지다는데, 아직 해지는 모습을 보기에는 시간이 남아 기다릴 용기가 나지 않는다. 돌아 갈 길도 멀어  눈에 보이는 S자 물길의 습지, 갈대밭의 신비로운 모습으로 이곳을 찾은 기쁨을 대신한다.  [전망대에서 순천만] 돌아 나오는 길이 힘들게 느껴지나, 눈앞의 광경을..

하동 : 최참판댁

하동을 지난다. 하동에는 박경리 선생님의 대하소설 『토지』, 주인공인 최치수 및 최서희 일가와 주변 인물들의 생활공간을 재현한 최참판 댁이 있다. 하동이 악양면 평사리 일대에 최참판댁을 건립하여 문화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1997년 6월 대하소설 『토지』 최참판댁 건립 추진, 1999년 12월 착공, 2년 뒤인 2001년 2월 준공하였다고 한다.  [최참판댁] 최참판이 나무그늘아래 책읽으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듯 하다.  [사랑채로 들어가는 중문] 여러채로 고가의 멋을 충분히 살리고 살림살이도 잘알려주는 공간이라 생각된다.   [최참판 댁 사랑채] 사랑채의 루상의 마루에 앉아 주변의 한옥이 보이는 옛스러운 멋을 음미한다. 나오는 길 멀리 들판을 바라보며, 소설의 내용보다는 너른 들을 내려다 보..

남해 독일마을, 용문사

창선 삼천포 대교를 건너 섬 아닌 섬 남해의 독일마을에서 숙박을 하고 아침 마을 을 산책하여 본다.   [독일마을] 파독으로 간호사와 광부로 샐활하다 조국으로 귀국하여 여생을 보내는 분들이 바다가 보이는 이곳에 독일식 가옥을 짓고 집성촌을 이루어 만들어진 곳 이어선지 유럽풍의 생활을 느끼게 한다.아침운동을 나선 주민어른과 의 아침 인사 후 만남의 시간을 가져본다.      이 곳을 알리는 파독 전시관 문이 열리지 않아 접하지 못하고 발실을 돌리게 된다. 고국으로 돌아와 여생을 남해 독일마을에서 보내시는 파독광부의 광산에서 사용했던 작업도구와 작업복, ‘코리아 엔젤’이라는 찬사를 들어온 파독간호사의 병원생활도 생생히 살펴볼 수 있도록 전시되어 있는 삶과 애환, 그 속에서도 단 한 순간도 잊지 않았던 고국에..

사천 선진리 왜성

오늘은 남해를 방문한다. 해외거주 형님 내외와의 여행 길을 함께 한다. 숙소인 남해에서 일박 후 동이던 서던 바닷길을 따라 이동 할 생각으로 나선 길에 쉽게 접하기 어려운 사천의 선진리 왜성을 들려본다. 몇번의 방문은 이곳에 만연한 벛꽃을 보기 위해 들르던 곳이었지만 오늘은 그간 단장된 모습을 보기 위해 들른다. 새로이 주차시설도 잘 되어있어 벗꽃이 한창일때는 많은 사람이 다녀 갔을듯 한데 오늘은 한두팀 정도 보인다. [사천 선진리 왜성] 주차장으로 부터 언덕을 오르니 왜성이 자리한다.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이 시작되고, 남원성 전투 이후  북상하던 일본군이 명량 해전 패배로 북상이 좌절되어서, 울산, 순천, 사천 등지에 왜성을 쌓고 장기 농성을 위해 축조 된 성이라 한다. 우리의 성은 유사 ..

청와대

찾아가 보기 어려웠던 보물을 찾아 길을 나선다. 경복궁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결국엔 청와대에 도착한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곳은 2022년 5월 부터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를 이전하면서 개방되어 출입할 수 있어 그동안 만나기가 힘든 보물을 접할 수 있어 찾아보는 기쁨이 있다.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더보니 정문이 아닌 춘추관의 문으로 입장하게 된다.  춘추관을 들어가 1층의 브리핑 장소를 들려본다.  춘추관을 통해 산책길을 따라 걸으니 언덕에 잘 지어진 한옥이 보여 발길을 옮긴다. [침류각]  침류각이 청와대 관저 뒤편의 산책로에 자리한다. 침류각은 그리 크지 않은 건물로, 정면 4간, 측면 2칸으로 주춧돌과 기둥이 사각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에, 처마는 겹처마에 경포는 없다. 단청도 현판도 없으나, 세살무늬..

대한민국/서울 2024.11.29

경복궁

경복궁의 경전과 내전을 거쳐 담밖으로 나선다. 담장을 장식하는 문양을 바라보며 넋을 빼앗기다가, 차가운 날씨에 정신 차려 후원으로 향한다.  [담장] 발길은 북쪽으로 연뭇 위의 섬 속에 자리한 향원정을 찾아 나선다. [보물 제 1761호 경복궁 향원정] 2012년 보물로 지정된 향원정은 북쪽 후원의 향원지 연못의  육각형의 정자이다. 이 곳에는 원래 세조 2년에 취로정(翠露亭)이란 정자를 지었다는 것이 「세조실록」에 있다 하는데, 연못의 크기는 4,605㎡, 모서리가 둥근 방형의 연지로, 수원(水源)은 북쪽 언덕에서 솟아나는 '열상진원(洌上眞源)'이라는 샘물이라 한다. '취향교'는 6·25전쟁 없어지나, 1953년에 향원정 남쪽에 석교로 사용되다가, 2012년에  발굴조사를 거쳐 향원정 북측의 제 위치에..

대한민국/서울 2024.11.29

경복궁

허리에 문제가 있어 한동안 활동이 힘들었는데, 오늘은 여행의 정리를 기록으로 남기지 못한 것을 찾아 올려 본다. 너무 많은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경복궁을 찾아본 일을 정리 못하다가 지금 소개하고저 한다. 원래의 이번 여행 목적은 청와대와 그 곳에 있는 석불상을  찾아보려 하였는데, 가는 길에 내린 전철역에서 경복궁을 들어가게 되어 광화문의 뒤로 들어서게 된다. 추운 날에도 한복을 차려 입고 이곳을 찾은 외국인 들이 함께 한다. 경복궁은  태조 4년(1395)에 천도후 처음 세운 궁궐로, 정도전이  큰 복을 빈다는 의미로  ‘경복(景福)’이라는 글자로 이름지었다 전한다. 임진왜란(1592)에 불에 탄 것을, 1867년에 흥선대원군이 다시 세우나, 고종의 아관파천으로 경복궁은 빈 궁궐이 되고, 일제시대를 지..

대한민국/서울 2024.09.02

아산 : 온주아문, 동헌

[온주 아문] 온주아문 및 동헌은 조선시대 온양군에서 관아로 쓰인 건물이라 한다. 이 문은 조선 고종 8년 (1871년)에 다시 세운 것이라 하며, 여러차례 변경되다가 1993년 수리 복원하였다고 한다. 앞면 3칸, 옆면 2칸의 문위의 누각 건물로, 기단위에 높이 1.5m높이의 주춧돌을 넣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만든 모습이다. 온주의 뜻은 신라문무왕 3년에 온양군을 '온주'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 듯 하다고 안내되어 있다.  [동헌] 온주아문 안에 자리한 동헌은 지금은 들어가지를 못한다. 매장 문화 발굴작업 중이라 하여, 담 밖에서 안의 모습을 들여다 본다.앞면 6칸, 옆면2칸의 홑 처마 팔작지붕으로, 길게 다듬은 받침돌을 쌓아 기단을 만들고, 주춧돌을 올려 사각기둥을 세운 이건물은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