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로 들어서 본다. 이번 발길은 강화군 장정리의 석탑과 석조여래 입상 보물을 찾아보기 위함이나, 다리를 들어서며 바닷가에 설치된 보를 보지 않을수 없어 찬찬히 섬의 해안길을 따라 돌아본다. 강화도에는 5개의 진과 7개의 보, 53개의 돈대가 섬전체를 에워싸고 있다고 한다.
[초지진]
강화로 들어서며 1656년 강화유수 홍종보가 초지진과 이때 심은 것으로 추정된 400여년 된 소나무의 위용을 보여준다.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군에, 1875년 운요호 사건시 일본군과의 포격전에 무너졌다고 하는데, 이때의 포격에 의한 상처가 소나무에 남아 당시 상황을 알려주고 있다.
[덕진진]
덕진진은 방어 요충지며, 수영에 속하는 진으로 덕진돈, 남장포대 등이 이곳의 관활이었다 한다. 돈대와 포대는 조선 숙종5년 설치되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에 외세와 싸운 장소로. 신미양요때 미해병대에 점령되어 홍예문만 남고 파괴되어, 1977년 돈대와 성곽을 보수하고 덕진진의 성문인 공조루를 복원하였다 한다.
[광성보]
우리의 역사속에 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아프고 상처받은 일이 많지만, 고려 무신정권 시대 몽골의 침입에 대비해 만들어지고, 조선 효종 대에 재건되어 , 광성포대, 광성돈대, 용두돈대, 손돌목돈대 등의 여러 포대와 돈대가 소속되어 있는 광성보는 신미양요 때 미국과의 치열한 격전지로, 어재연 장군과 500명의 군사가 초지진, 덕진진을 함락하고 오는 미국에 맞서 손돌목돈대에서 치열한 백병전까지 벌이나, 지휘관 어재연, 동생 어재순과 군사 300여 명이 죽거나 다치고 20명이 포로, 100명이 자결하는 대패를 당한 가슴아픈 곳으로, 폐허를 1970년대 복원하였다 한다.
[갑곶돈대내 화기, 불랑기, 소포, 대포]
[월곶돈대]
숙종때 강화유수 윤이제가 정비한 것으로 알려진 타원형의 성벽으로 유럽의 성을 연상시키는 성벽을 가진 월곶돈대는 문루인 조해루와, 조선 무신인 황형택지비를 지나 작은 언덕에 자리한다.
[연미정]
오르며 보이는 성벽도 특이한데 안에는 옛 정취가 느껴지는 고려시대 정자이다. 월곶리가 한강과 임진강 합류 지점으로 하나는 서해로, 하나는 갑곶 앞을 지나 인천쪽으로 흐르는데, 그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 하여 연미정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후금의 침입으로 인한 정묘호란시 정묘 약조의 화의가 맺어진 곳이 이 곳이라 한다. 500년 넘은 듯한 느티나무 두그루 중 한구루는 부러진채 돈대안에 자리하고,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민간인통제구역 이북에 속하여 출입에 제한이 있었으나,민간인통제구역에서 해제되어 관람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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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
연미정 앞의 머무르섬(유도)은 500여m 떨어진 비무장지대 내에 위치한 무인도이며, 1996년 대홍수 때 떠내려 와 이곳에 고립된 황소를 표류 5개월 만에 해병대가 구조 하여 '평화의 소'라고 불리며 알려진다. 오래 기간 비무장지대라 구조가 쉽지 않음을 알게해 준 소는 제주에서 천수를 다했다고 한다. 북한지역이 눈앞에 보이는 곳으로 분단의 현실을 눈으로 느끼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