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으로 길을 접어든다. 기억해 보니 지난 겨울 일흔번째 여행 길, 이곳 논산의 명제고택을 소개 했으나, 그 때는 겨울이라 고택의 여름 멋을 느끼지 못했다는 생각으로 다시 방문해 보려 한다. 푸른 녹음과 여름의 태양광에 밝게 빛을 발하는 모습, 그리고 물이 채워진 연못으로 생명감이 있는 모습이 기대된다. 집 앞에 당도하니 네모난 인공 연못에 원형의 섬에 연잎과 함께 자리한다. 물가를 한번 돌고 넓은 마당이 있는 고택으로 향한다.
연꽃이 피어난 연못도 갖춘 이 고택은 지정 당시 명칭은 '윤증선생고택(尹拯先生故宅)'이었으나, 조선 숙종 때의 이름난 유학자 명재 윤증(1629-1711)이 지었다고 전하는 가옥인 점을 반영, 그의 호를 따라 ‘논산 명재 고택’으로 지정명칭을 변경(2007.1.29)하였다고 한다. 연못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 사상을 형상화한 것이라한다.
연못을 지나니 여름의 녹색 세상에서 붉은 꽃을 자랑하는 배롱나무의 줄기가 고택과 어울려 방문자의 맘을 설레게 한다.
고택은 노성향교와 나란히 남향으로 조선 후기 숙종때에 건립되어, 후대에 수리 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안채와 사랑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되어 있다.
한 여름 한옥 건물과 가장 잘 어울리는 배롱나무가 함게 하여 오늘의 방문을 맞아주고 있다.
[사랑채]
이산(尼山)이라고도 불리는 노성산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산 줄기의 남사면에 남향으로 자리하는, 집 전체의 평면 구성 형태는 ‘ㄷ’자의 안채와 ‘一’의 사랑채가 조합을 이룬 ‘ㅁ’자형 집이다. 사당은 멸실 되었던 것을 1983년 복원하였다고 한다. 사랑의 앞면에는 넓은 마당이 있고, 마당의 왼쪽에는 우물이 있는데 나무로 둘러쌓여 있다. 사랑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오른쪽 엔 대청을 두고, 왼쪽에 누마루를 두고, 중앙에는 2칸 규모의 온돌방이 있으며, 앞면은 반 칸을 안으로 들여 툇마루를 두었다.
[사랑채 옆면]
누마루 후면으로는 1×2칸의 방이 꾸며져 있어, 대문 옆의 행랑채와 ‘ㄱ’자형으로 연결되고 있다. 구조는 공포가 없는 민도리로, 퇴고주를 세워 퇴량과 대들보를 걸었으며, 종량 위에 있는 제형 대공에서는 뜬창방을 볼 수 있다.
[사랑채 측면]
온돌방 뒤에 반 칸의 고방(庫房)이 있으며, 대청에 문을 달아 개방과 폐쇄를 통하여 사생활 공간의 자유를 보장 받는 듯 하다.
대청에서 내려다 보는 장독대를 보며 풍요로움과 여유를 만끽했을 것 같다.
사랑채의 오른쪽으로는 현재 윤증 집안에서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장류를 상품화하여 지역 특산물로 양산하기 위한 장독대들이 들어서 있다.
[사랑채와 중문간채]
높은 기단 위에 사랑채가 있고, 왼쪽 1칸 뒤로 '一' 자형의 중문간채가 자리한다. 중문간채는 안채로 가는 1칸 돌아 들어가게 중문이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ㄷ'자 모양의 안채가 있어, 중문간채와 함께 튼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다.
[안채]
들어가 볼 수 없어 소개 글로 정리 유추 해본다. 안채는 1고주 5량가 구조로,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대청과, 뒤편 좌우에 각각 쌍여닫이 띠살문의 고방(庫房)이 있고, 대청의 서쪽으로 2칸의 안방과 1칸의 윗방을 두고, 남쪽으로 부엌이 있다. 안채의 남쪽에 위치한 대문채는 사랑채와 ‘ㄱ’자로 연결된다. 대문이 별도로 없어 중문을 대문으로 겸하되, 문이 열려도 안채가 바로 보이지 않게 판자벽을 두어, 외부 시선을 차단하는 역활을 하게 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