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충청북도

제천 청풍문화재단지, 물태리 석조여래 입상, 한벽루

如一 2022. 2. 17. 13:41
如一同行 열여덟번째 - 제천(1) 
 청풍문화재단지, 물태리 석조여래 입상, 한벽루, 如一 유광하 기자등록 2021.06.10 16:12
 

보물 제 94호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은 월악산 국립공원내에 존재한다. 장락동에서 이곳을 가려면 청풍문화재단지를 지난다. 이곳에 보물이 둘 그리고 수몰 될 문화재가 다수 옮겨져 있어 그냥 지날 수가 없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체온측정과 마스크착용으로 입장이 허가 된다. 

 

 

△ 팔영루 전면

 

△ 팔영루 성안 모습

 

관람료를 지불하고 팔영루를 통하여 단지 내로 들어선다. 아쉽게도 이날 거리두기로 인하여 수몰역사관과 유물 역사관은 개관하지 않는다.

 

 

△보물 제 546호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

 

이곳에서 맞이한 보물은 제 546호인 제천 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이다. 이날은 주변 정리 작업으로 주변은 공사 중이다.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청풍면 읍리에서 현재의 청풍강 옆 대광사 입구로 옮겨진 이후 이곳으로 온 이 불상은 전체적인 조각양식을 볼 때 10세기 무렵의 작품으로 보인다.

높이 3m 41cm의 거대한 불상으로 신라말 고려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당초에는 불상각이 없었지만 이전시 불상각을 새로 지은 것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매우 작아서 우뚝해 보이며 사각형의 얼굴은 후덕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가늘면서도 두툼한 눈, 넓적한 코, 뚜렷한 인중은 자비로운 부처의 풍모를 잘 나타내고 있다. 두 귀는 양 어깨까지 길게 드리워져 있고 목에는 3개의 주름이 형식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옷은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데 옷주름이 두껍게 처리되어 신체의 윤곽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허리에는 치마를 묶은 띠매듭이 표현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는 U자형의 주름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흘러 내리고 있다. 손은 오른손을 들어서 손가락을 구부렸고, 왼손은 늘어뜨려 손가락을 펴서 밖으로 내보이고 있다. 불상으로부터 3m쯤 떨어진 곳에 방치되어 있는 원래의 대좌는 8각의 연화좌로 각 면에는 연꽃이 새겨져 있다.

 

 

△ 석조여래입상

이 석불입상은 당당한 어깨, 양감있는 표현 등에서 통일신라 불상의 힘을 느끼게 하고 있지만, 목의 형식화된 주름이라든지 비사실적인 손의 표현과 괴체화된 신체 등을 볼 때 고려시대의 작품이 확실하다. 그리고 구전에 의하면 입상앞에 있는 둥근돌(소원돌)을 본인나이만큼 남자는 오른쪽, 여자는 왼쪽으로 돌리며 기원하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전해진다.

 

 

△ 금남루

 

안으로 길을 걷다보면 청풍 금남루가 자리한다. 조선 순조 25년(1825)에 부사 조길원이 세운 관청의 정문으로 고종 7년(1870)년에 고쳐 지었고, 1985년에 청풍문화재단지 안으로 옮겼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2층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1층은 3개의 문으로 되어있는데, 가운데 문은 부사가 출입했고 양쪽 문은 평민이 출입했다고 한다. 2층에는 난간을 둘렀으며 사방이 탁 트여 멀리있는 적의 동정을 살필 수 있도록 하였다. ‘도호부절제아문(都護府節制衙門)’이라는 현판은 건물을 세울 당시에 부사 조길원이 썼다고 한다. 본루는 동헌 앞에 설치되어있는 정문으로 당초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었으나, 내삼문응 현재 보존되어 있지 않고, 외삼문인 금남루만 남아 있다.

 

 

△ 금병헌

 

이문을 지나면 금병헌이 보인다. 집회 및 집무를 처리하던 동헌이라고 전해지는 이 건물은 명월정이라고도 한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창건하고, 영조 2년(1726)에 부사 박필문이 개축하고 이름을 금병헌으로 바꾸었다. 광무 4년(1900)에 전체적으로 보수하였는데, 충주댐 건설로 인하여 1983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앞면 6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건물의 오른쪽은 대청이고 왼쪽은 온돌방이다. 죄인을 가두어두던 부속건물이 있었으나 조선 말기에 없어졌다. 지금은 인형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하고 있다.

 

 

△ 응청각

 

 주변에는 응청각 조선시대 관아의 누각건물로 19세기 초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원래 청풍현 객사 누각인 한벽루 옆에 나란히 세워졌던 2층 누각이었는데, 충주댐 공사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1단의 기단 위에 세웠는데, 1층은 둥근 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를 흙벽으로 막아 창고로 사용한 듯하다. 2층은 앞면만 둥근 기둥을 세우고 나머지는 네모 기둥을 세웠으며 난간을 둘렀다. 동남쪽으로 3단의 나무계단을 설치하여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단청이나 다른 색칠을 하지 않고 목재면을 그대로 둔 집으로 비교적 소박한 누각이다.

 

 

△ 보물 제528호 한벽루

 

웅장한 자태를 가진 한벽루를 마주한다. 이 목조건물은 보물 제 528호 이다. 건물은 고려 충숙왕 4년(1317) 당시 청풍현 출신 승려인 청공이 왕사(王師)가 되어 청풍현이 군(郡)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객사의 동쪽에 세운 건물이다. 고종 7년 (1870)부사 이직현이 중수하고, 1971년 1월 8일 보물로 지정되고 1972년 수해로  건물 일부가 유실되어 1976년 다시 보수하였다. 원래의 위치는 청풍면 읍리에 있었으나 충주댐이 세워져 읍내가 수몰됨에 따라 1983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 한벽루

 

 구조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2층 누각과 앞면 3칸·옆면 1칸의 계단식 익랑건물이 이어져 있다. 기둥 사이는 모두 개방하였으며 사방에 난간을 둘렀다. 건물 안에는 송시열·김수증의 편액과 김정희의 ‘청풍한벽루’라고 쓴 현판이 걸려 있다.

 

 

△ 한벽루

 

밀양 영남루(보물 제147호), 남원 광한루(보물 제281호)와 함께 본채 옆으로 작은 부속채가 딸려 있는 조선시대 누각 건물의 대표적인 예이며, 세 건물 가운데 가장 간결하고 단아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 ㄷ자형 집

 

△ ㄱ자형 집

 

이곳에는 제천의 황석리, 도화리, 후산리, 지곡리의 고가가 옮겨와 복원되어 있다. 목조기와집으로 일자형 ㄷ자형, ㄱ자형등의 가옥의 특징을 알수 있도록 나란히 옮겨 놓았다.

 

 

△ 지석묘

 

아울러 지석묘와 문인석, 공덕비선정비등을 옮겨보전하고 있다. 청풍문화재단지를 통하여 수몰 될 뻔한 문화재를 모아 보전하고, 건물들의 배치도 주변환경과 조경이 무척 조화로워선지, 그 건물들은 원래 그곳에 있었지 않았는가 하는 느낌을 받았다.

 

 

△ 청풍호 원경

 

△ 청풍호 원경

 

언덕 끝자락에서 호반의 전경을 바라본다. 다음에는 한벽루의 2층 누각에 앉아 호수를 내려다보며 명상에 잠기는 소소한 즐거움을 맛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쁘게 둘러보다 보니 그러한 소소한 여유를 즐기지 못하고 길을 나선다. 이제는 송계계곡을 향하여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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