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충청북도

청주 , 제천 계산리사지, 장락사지

如一 2022. 2. 11. 17:31
如一同行 열일곱번째 - 청주, 제천如一 유광하 기자등록 2021.06.06 10:19

오늘의 여행지는 월악산과 청풍호, 의림지가 있는 고을 아닌 제천시 이다. 이곳 제천에는 보물이 6개가 존재하는데, 오늘 여행길에서는 제천 그리고 청풍문화제단지를 거쳐 송계계곡을 지나 수안보로 나오는 길을 택하여 그 중 4개를 볼 수 있다. 오늘 놓친 보물은 덕주사 마애여래입상과 신륵사 삼층석탑이다. 덕주사 마애여래 입상은 송계계곡내에 있으나 산을 올라야 하는 어려움으로, 신륵사는 다른 계곡에 존재하여, 다음에 찾기로 하고 이번 나들이는 청풍호를 끼고 굽이굽이 도는 길과 월악산의 송계계곡의 절경을 보는 즐거움을 함께 하는 것을 낙으로 삼는다.

 

청주를 지나며 이번 여행의 또 따른 멋은 각기 다른 형태의 탑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제천의 보물 두 탑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와 다른 탑이기에 가는 길에 비교되는 탑인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형태의 청주 계산리의 오층석탑을 소개하기 위해 옆길로 잠시 들어서 본다, 이곳 계산리사지는 (옛 회인현)의 땅으로 피반령을 넘나들던 길목이다. 절터가 있는 마을은 ‘말미장터’로 얼마전가지 장이 섰다고 한다. 그 동안은 기록이 없어 절의 연혁이나 규모를 알지 못하였는데, 2020년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절의 구조와 베치가 확인된다.

 

청주 계산리 사지 설명도

 

발굴 조사를 통해 여러채의 건물터와 작은 돌을 깔아 만든 네모꼴의 구조물 (석탑지와 석등 석상 등)을 세웠던 자리가 2기 발견되고, 오층석탑은 한차례옮겼으며, 남북방향에서 동서방향으로 절의 구조가 바뀐 사실도 알게 된다. 또한 여러차례 증축으로 적심석이 중복되고, 기단을 여러번 쌓은 흔적도발견된다. 청주 계산리사지는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기와, 도기 청자 등과 1970년대 정비사업 중에 출토된 석조상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인 10~12세기에 운영되었고 오층석탑도 그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청주 계산리 사지 전경

 

계산리의 말미장터 남쪽 언덕의 밭 가운데에 서 있는 탑으로, 1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보물 제 511호로 주소는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계산리 산 46-3호로 동네에서 오른쪽 언덕으로 올라서면 너른 주차장이 나온다. 둔덕을 오르면 넓은 개활지에 탑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이다.

 

 

 

보물 제 511호 청주 계산리 오층석탑

 

 기단(基壇)은 가운데돌이 서로 엇갈려 짜였으며 아무런 조각이 없다. 탑신(塔身)은 1층과 3층의 몸돌은 4장의 돌로 구성하였으며, 2층과 4·5층의 몸돌은 하나의 돌로 구성하였다. 지붕돌은 1·2층이 2장의 돌로 이루어져 있고, 3층 이상은 한 돌이다. 지붕돌 아래받침은 1·2층이 5단, 3·4층이 4단, 5층은 3단으로 줄어들었다. 지붕돌의 윗면(낙수면)은 경사가 심하며, 지붕돌 아래의 받침은 처마끝까지 나와 있어 둔중한 느낌이 들지만 전체적으로는 균형이 잡히고 안정감이 있다. 이 탑은 고려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위아래 지붕돌의 체감률이 정연하여 전체적인 안정감이 느껴지는 우수한 작품이다.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장락사지터

 

서둘러 제천으로 향한다. 정해진 행선지로 인해, 볼거리가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맞을지 맘이 급하다. 제천을 지나며 점심식사를 하고, 보물 제 459호인 장락동의 칠층모전석탑이 있는 장락사지에 당도한다. 일반적으로 사지 (절터)에는 보통 석탑과 선사들의 탑과 탑비 또는 석불상이 남아 그곳이 절터였음을 이야기 해주고 있는데, 이곳 역시 사지에는 절터의 흔적이 발굴로 나타났다. 

몇몇사지에는 남은 문화재를 바탕으로 사찰이 중창되는데 이곳 장락사지도 지금은 탑 뒷편에 불사를 증축하고, 주변의 환경도 많이 정비하여 사찰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가는 중이다. 사지에 덩그러니 쓸쓸히 존재하는 문화재를 많이 보아왔는데 반드시 사찰을 지을 수는 없어 그 모습에서 을씨년 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장락사지 발굴 설명도

 

장락사지는 충북 제천시 장락동에 위치한 옛 절터이다. 2003년부터 2008년까지 한차레의 시굴조사와 세차례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34개동의 절터와 담장지, 보도시설, 우물이 확인 되고, 기와류 , 토기류, 흙거푸집, 글씨없는 비석, 쇠솥, 쇠못, 쇠자물쇠, 청동 숟가락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장락사지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이래 조선 중기까지 존속 하다가 17세기경에 폐사 된다. 창건 이후 다섯차례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루어지고, 가장 번성한 시기는고려시대로 조사지역 전체에서 유규가 확인되고, 유물 또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한다. 

장락사지 발굴조사의 성과는 제천에서 최초로 확인된 삼국시대 불교유적이라는 점이고, 연화문 수막새와 새끼줄무늬 및 직선문이 세겨진 기와등은 제작시기가 6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되어, 고대문화 전파경로와 제천지역이 고대역사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보물 제 459호 제천 장락동 칠층모전석탑

 

 이곳의 탑은 칠층모전 석탑이다. 모전석탑이란 돌을 벽돌모양으로 깎아 쌓은 탑으로, 흙벽돌을 쌓아 올린 전탑을 모방하였다 하여 모전탑(模塼塔)이라고도 한다. 탑이 서있던 절터가 논밭으로 변하여 절의 규모는 알 수 없고, 7층에 이르는 거대한 이 탑이 주위를 압도하듯 버티고 서 있다.

회흑색의 점판암을 사용한 탑으로, 탑을 받치는 기단(基壇)만은 점판암이 아닌 자연석으로 1단을 마련하였으며, 그 위로 벽돌로 이루어진 7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탑신은 부처의 사리나 불경 등을 모셔두는 곳으로, 1층의 네 모서리에는 점판암 대신 화강암을 다듬은 기둥을 세워 그 모습이 특이하다. 또한 남쪽과 북쪽면에 사리를 두는 감실(龕室:불상이나 사리 등을 모시는 방)을 설치하여 문을 달아 놓았는데, 현재 남쪽의 것은 없어졌다. 

1층의 남쪽과 동쪽면이 몹시 부서져 있는데 이러한 피해는 2층의 지붕돌까지 이르고 있다. 각 몸돌을 덮는 지붕돌은 재료가 벽돌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듯 경사면 위아래 모두 층급을 두었으며 처마도 짧고 수평을 이룬다. 지붕돌의 네 귀퉁이에는 아래위로 구멍을 뚫어 풍경을 달도록 하였다.

 

탑의 머리부분에는 머리장식이 없어지고 장식받침인 노반(露盤)만이 남아 있는데, 그 윗면 한가운데에 동그란 구멍이 있고 구멍둘레로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1967년 무너지기 직전에 탑을 해체하여 보수했는데, 7층 지붕돌 윗면에서 꽃무늬가 조각된 청동조각이 발견되어 혹 탑의 머리장식이 아닐까 한다.

 

탑신 전체에는 표면에 회를 칠했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주목된다. 만드는 형식이나 돌을 다듬어 쌓아올리는 수법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석탑주변, 장락사

 

석탑주면 조경공사

 

주변의 환경정비로 엣 사지에는 아직 복원이 없는 절터로 남아 있으나 탑 주변의 개울과 입구 쪽은 꽃을 심으며, 새로운 시설물의 설치 등 정비공사가 한창이다. 다만 아직 진입로와 주차공간이 없슴은 바뀐 것이 없어 다소 불편을 느끼던 것이 아직 개선되지 않은 것이 아쉬움으로 남아, 진입로와 주차공간의 확보로 많은 사람들이 탑을 찾아 기품을 느꼈으면 한다.

 

이곳 탑이 모전 석탑으로 특이한 탑 임을 강조하기 위해 조성된 공원시설물에는 각종 탑의 종류와 특징을 사진을 통해 잘 설명하여 주고 있어, 문화제 이해에 다소나마 도움이 되고 있다. 더욱 정비된 장락사 모습을 기대 하며 보물 제 94호 제천 사자빈신사지 사사자 구층석탑을 찾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