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충청북도

청주 문의 문화재 단지

如一 2022. 7. 19. 21:54

如一同行 일흔 한번째 - 청주 문의

문의 문화재 단지

청주의 문의로 길을 나선다.  미루고 가보지 못한 돌다리가 생각난다. 대청댐으로  수몰 될 다수의 문화재를 옮겨 보존하는 문화재 단지 안에 돌다리가 있다. 제법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며 문화재 단지로 접어든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왼쪽으로 보이는 성문을 향해 오르면 문화재 단지로 들어선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이 많지 않아선지 여유로움이 생긴다. 

 

[양성문]

 

문의의 양성산성을 인용하여 성곽을 만들고 지은 신축 건물로 명칭을 양성문으로 한 성루이다.

 

 

[양성산성] 

 

원래의 양성산성은 청원군 문의면 미천리 마을 서쪽에 있는 해발 292m의 양성산 정상부를 둘러싸고 흙과 돌을 섞어 쌓은 산성이다. 삼국시대 축조된 산성으로 후삼국시대까지 치열한 격전 장소로 군사적·행정적 중심지 역할을 했던 산성이다. 이곳은 문의면의 대표산성의 명칭만 빌려온 듯하다.

 

[단지내 전경]

 

돌탑과 십이지신상으로 조경이 되어 있다. 따스한 볕을 받으며 주변을 돌아본다. 먼저 위치를 모아 둔 돌다리로 향한다. 문화유물전시관앞에 자리한다. 사각의 큰돌로 만든 옛스러움을 가진 다리가 보인다. 다리는 연뭇 위를 건널 수 있게 설치 하였다. 다만 난간이 없는 다리를 많은 관광객이 건너다 빠질 위험이 있어서 인지, 목책에 밧줄로 난간을 만들어 두어 그다지 좋은 모습으로 다가 오지 않는다. 다리의 난간은 한양이나 궁궐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한양의 수표교. 광통교와 궁궐내의 다리는 난간이 존재한다.  요사이 만든 다리가 아닌 지방 사적지의 다리에는 난간이 없다. 난간이 없이 관람이 가능하고, 제자리가 아닌 다리의 원형을 살릴 수 있게 하기 위해,  원래 있던 환경으로 꾸며 보전하는 것으로 연구되어 졌으면 한다.

 

[천주 문산리 석교]

 

[천주 문산리 석교  상판]

 

[청주 문산리 석교]

 

[임시 보강한 안전바]

 

[교각]

 

[충청 무형문화재 222호 청주 문산리 석교] 

 

청주 문산리 돌다리는 작은 연못을 만들고 위로 다리를 이전 설치하여, 넓은 벌이나  흐르는 시냇물을 건너는 운치를 맛볼 수 없다.  뭔가 모를 아쉬움이 자리한다. 

이 다리에 대한 설명문에는  상판의 장대석은 장축을 남북으로 하여 2배씩 연결하고, 동서로 5배식 연접하여 마루식으로 만들고, 남북 장축 중간에 동서로 교각이 받치고 있으며, 석재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다. 석재는 거칠게 다듬어져 있고 석주를 갖춘 시렁교이다. 이 석교는 교각내에 을묘이월 (乙卯二月)이라는 각자와 교각 중심에 을(乙)각자가 남아 있다. 축조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조선 헌종 초기에 편찬된 충청도읍지에 최초의 기록이 나온다. 1980년 대청댐이 건립되면서 문의 초등학교 정문에서 남쪽으로 100m 전방에 있던 석교가 문산관과 함께 미천리로 이전 되었다가 2002년 3월 문이 문화재단지로 다시 이전되었다 한다. 조경보다는 다리를 돋보이게 하도록 주변 환경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학소리 유적1호 집자리]

 

석교 앞에는 학소리 유적을 복원하여 놓았다. 아마도 이 곳의 출토유물은 전시관에 보관 되어 있을 것이다. 문이 닫힌 것 같아 지나친다. 유적의 위치는 불당산 (246m)에서 동남쪽으로 내려오는 두개의 가지능선 가운데 북쪽에 위치한 능선의 말단부에 해당하며 동쪽으로 미호전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고, 하천의 주변으로 넓은 평야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유적의 가운데에 위리한 과수원을 기준으로 북동쪽으로 낮은 능선이 북주하고 있으며, 동쪽 사면으로 경사 낮은 경작지를 형성하고 있다. 유구는 황갈색 및 적갈색을 띠는 풍화 암반층에서 확인되었으며, 청동기시대 집자리 4기, 석관묘 7기, 토광묘 19점, 청동류 14점, 철기류 40점, 옥석류 15점 등 이 출토되었다 한다.                                                                                      

[망루와 대청호]

 

[누정과 호수]

 

이곳 문화재 단지 내에선 대청호의 전경이 보인다. 대청호을 바라보며 단지 내를 천천이 둘러보며 평온함을 느껴본다. 원경의 호수와 가까이의 문화재가 다채롭게 어울려 눈을 즐겁게 한다. 단지내에 옮겨 놓은 고가를 접한다. 사대부의 고가는 아니지만 어릴적 외가집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고가를 본다. 모습이 같지는 않다. 내가 어릴때 놀던 외가집은 안동댐으로 수몰된 예안이라는 곳에 있었다. 같은 수몰지역이라는 생각 끝에 잠시 옛집과 그 시절을 떠올려 보며 고가 안으로 들어선다.

 

[청주 부강리 고가]

 

 

[청주 부강리 고가]

 

이 집의 안채는 부용면 부강리이 김종철씨가 살던 곳이라 한다. 이 고가를 1995년 이곳으로 이전 복원한 것이다. "ㄱ"자 형대의 목고 기와집이다. 광채는 새로 지은 것이고. 지붕을 판석으로 덮은 돌기와 집으로 중부지방의 산골부락에 많이 있던 형태이다. 

가까이 솟을 대문이 있는 고가가 보인다. 앞에는 문의 의 많은 사적비가 자리한다. 양반가옥이다. 

 

 

[양반가옥] 

 

[양반가옥] 

                                                                                                     

 

[양반가옥]

                                                                                       

 

[양반가옥]

 

이 양반가옥은 중부지방의 양반이 살았던 옛가옥을 재현 한 것으로 양반가 중에서도 문별이 높은 사배부 가옥에 가까운 건축 구조이다.  가옥의 구조는 목조와가(木造瓦家)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크게 구분되고, 부속건물로 안채 뒤편에 가묘(家廟)와 우측으로 광과 측간(厠間)을 배치하여 1994년도에 건립하였다.

단지의 윗부분으로 산책하듯 오르면 관청건물이 보인다. 

 

[문산관  왼쪽은3칸, 오른쪽은 4칸]

 

[문산관]

 

[문산관]                                                                                                           

 

[문산관 옆면]

 

문산관은 조선 현종7년(1666년) 에 세워진 문의현의 객사이다. 건물 구조는 목조기와의 고주(高柱)집으로, 정면 3칸, 측면3만의 맞배집인 중앙건물과 앞에서 보았을때 정면 3칸 측면5칸의 왼쪽건물 (우익현)과 정면 4칸. 측면3칸의 오른쪽 건물 (좌익현)로 이루어져 있다. 오른쪽 건물(좌익현)은 팔작집 한 쪽을 개조하여 붙였는데 , 중앙건물과 양쪽 건물사이에 협칸이 있고 그 부재나 수법으로 보아 건축 연대에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형태의 건축은 전주객사에서 그 유래를 볼 수 있어, 이 건물도 문의면 관아라기 보다 객사이다. 지붕의 암막새 연대로 보아 영조 4년 에 중수가 있었다. 수몰지역에 있어, 1979년 문의면 소재지로 이건되었다가 1996년 이곳으로 다시 이전 하였다.

 

[국전리 소나무]

 

문산관 옆에 세그루의 소나무가 위용을 자랑한다. 가덕 국전리의 음짓마을 소나무(문의 I/C 일원)의 수호목이다.

2001년 청주 - 상주간 고속도로 착공으로 베어질 위기에 있던 소나무들을 이 마을 출향 인사 이은봉씨가 사재를 털어 문의 문화대 단지로 옯겨 심은 것이라 한다.

언덕을 내려오며 또다른 고가를 만난다.

 

[청주 노현리 고가]

 

[청주 노현리 고가]

 

 

이 민가는 문의면 노현리의 연안 이씨 괴정 이현승 참봉이 살던 가옥이었으며, 당초 강릉 김씨 김승지의 종가였다. 가옥구조로 안채는 'ㄱ' 자 형태의 목조기와집이며 , 광채와 사주문, 측간은 목조초가로 되어있다. 1993년 손자인 이양훈에 의해 이곳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한다.

 

[도자기 가마]

 

 

이곳에는 충북 무형문화재 박재환 옹기장이 운영하는 옹기 체험교실과 전시 판매실도 있다. 옹기는 점토와 천연 잿물을 사용하여 1,200도씨의 온도에서 구워낸 질그릇을 말한다. 그리고 옹기장이란 전통기법에 따라 독과 항아리를 만드는 장인을 말한다. 박재환 옹기장은 1932년 이곳 봉산리 점촌에서 태어나 현재까지 6대째 전통옹기 도공으로 가업을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 박재환 옹의 6대조 박태진 공께서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곳에 정착하여 옹기를 굽기 시작한 이후, 옹기마을로 번성하고 마을이름도 점촌이라 부른다 한다. 이곳에 마을이 형성된 것은 미호천 유역에 점토가 많아 대토를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고, 주로 만드는 옹기는 항아리, 소줏고리, 장군, 자배기이며, 이곳에 전시관과 실습관이 자리하고 그 분의 작품이 판매도 되고 있다 .

 

[고인돌]

 

미원 수산리의 고인돌, 문의 가호리 고인돌, 내수 학평리 고인돌, 3곳에 있던 고인돌을 한곳에 모아 보여 주고 있다. 고인돌은 이곳 저곳서 본 것은 있으나 이것이 묘지라는 것 이외 학술적으로 지식이 없다. 단지 가운데 고인돌이 형태가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갖추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포지석을 통하여 지식을 얻어본다.

 

 

[단지와 호수]

 

[저잣거리]

 

단지내에는  시골 장터도 있고 온갖 민화, 공예품 제조 등의 체험장도 있으나 문을 열지 않아 썰렁하다. 또한 미술관이 자리하고, 옥외엔 많은 조각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데, 오늘 미술관은 작품 전시 준비로 문이 닫혀 있어 관람이 어렵다. 아쉬움에 박물관 앞에  전시 된 옥외 조각상을 제목과 함께 작가의 뜻을 옅보며  감상하다가 이따금 호수도 보며 길을 돌아 나온다. 우리의 문화재도 보고, 정자에 앉아 호수를 넋 잃은 듯 바라볼 수 도 있는 문화재 단지의 경험은 조용하고 평안한 하루를 만들어 주었다. 이곳 저곳 빠쁘지 않은 걸음으로 둘러보는 것도 운동이 되는지 다소의 나른함도 함께 한다. 오래동안 못한 숙제를 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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