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를 벗어나 증평 방향의 길을 접어든다.


[석조여래입상]

[석조여래삼존상]

뒷모습

[보물 재 1941호 청주 비중리 석조여래삼존상 및 석조여래입상 ]
이곳 비중리로 안내판을 따라 동네로 내려서면 길가이 낮은 언덕의 전각을 볼 수 있다. 이곳에 보물인 석조 여래 삼존상과 석조여애 입상이 자리한다. 길 주변에 주차공간이 없고 진입로가 명확하지 않아 다소 불편하다. 주변 하수시설 공사로 더욱 불편불하. 다만 전각과 주변은 울타리와 주변 환경이 잘 정리되어 있다. 느낌이지만 역사적인 귀중한 문화재이지만 원형의소실이 많이 되어 안타까움을 느기게 한다.
청주 비중리 석조삼존불좌상은 하나의 돌에 광배와 불·보살 삼존, 방형의 사자좌를 두터운 환조에 가깝게 조각하였다. 현재 좌협시 보살상은 결실된 상태이다. 본존불은 대좌의 좌우에서 두 마리 사자(獅子)가 위풍당당하게 앉아 불상을 호위하고 있는 방형의 사자좌에 앉아 시무외여원인(施無畏與願印)의 손짓을 지은 것으로 생각된다. 여래상이 앉아있는 사각형의 대좌는 본래 두마리 사자가 양옆에 서 받치고 있는 형태이었으나 현재는 오른쪽사자의 꼬리 부분 정도만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여래의 옷자락은 대좌 아래까지 늘어져 있다. 여래와 협시보살이 하나의 광배를 배경으로 구성된 삼존 형식은 삼국시대 6세기 중반을 전후한 시기에 크게 유행하였으며, 방형의 사자좌 역시 삼국시대 이른 시기에 유행했던 대좌의 형식이다. 우협시 보살상은 무거운 관식(冠飾)과 탐스러운 보발(寶髮)이 어깨 위로 늘어졌고, 목에는 끝이 뾰족한 첨판형의 목걸이를 착용하였다. 천의는 허벅지에서 X자형으로 교차한 고식의 천의(天衣)로, 6세기 전반기 좌우 뻗침이 강한 표현과 비교해 많이 누그러져 6세기 중반 경의 불상양식이 반영된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은 남아있는 불상도 네부분으로 조각난것을 복원한 것인데, 여래상은 얼굴과 왼편 일부가 오른쪽 불상은 발목이하와 대좌부분이 파손되었다. 가운데 여래상의 양옆에는 화불이 있는데 현재는 오른쪽 5구는 완전하나, 왼쪽은 한 구만 남았다.
현재 남아있는 삼국시대의 대형 석조 불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자 매우 희귀한 사례로 당시 지역의 역사와 문화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석조여래입상]
별도로 조성된 석조여래입상은 얼굴부분이 파손되었고, 광배와대좌도 남아있지 않다. 두꺼운 놋을 입어 신체의 굴곡이 드러나지 않으며, 왼손을 위로 오른 손을 아래로 하여 손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과 옷자락을 양쪽으로 뻗치고 잇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은 전각과 불상 그리고 큰 바위로 이루어진 구릉에 나무도 아름드리로 크고 전체적인 모습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바람이라면 오래전의 모습을 완벽한 재현을 할 수는 없겠지만, 삼불상이 존재하고 받침대의 사자상이 있는 모습을 고증하여, 예상도나 예상 조형물을 너른 이공간에 설치하여 보는 것은 어떨지 생각해본다. 다소 외지고 주변에 큰 사찰이나 관광지와 연계성이 적고, 또한 석조불상들의 마모가 심하고 민가와 너무 가까워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기는 쉽지 않으나, 상상도나 재현품이 많들어지면 낳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실제 원래의 모습은 어떨가 궁금하고, 그 모습이 다른 삼존상보다 규모나 구성이 빠지지 않아 관심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며 나라도 한번 그 모습의 상상도를 그려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귀가한다. [나만의 문화유산해설사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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