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녁한 사찰은 바위군을 이룬 산기슭을 활용하여 아기자기 하고 볼거리가 다양한 사찰이다. 이곳 저곳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것은, 바위와 건물 석조물이 조화롭고 다양함은 이 작은 사찰이 주는 매력이다. 가파른 산길을 내려와 저수지를 돌고, 독립기념관을 통과하여 가야하는 용화사로 향한다.

목천면사무소에서 병천으로 가는 길 왼쪽 산기슭에 있는 용화사는 마곡사의 말사로 사찰의 창건 내력은 알수 없으나 발굴된 유물로 신라말이나 고려초로 추정한다. 이곳에 충남 유형문화재 제 58호 용화사 석조여래 입상이 있다. 굽보나 보물은 아니지만 도 지정 문화재로써 미래에 연구가 되면 보물로 지정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사찰로 들어서는 입구에 일주문이 없고, 길을 따라 들어서면 최근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약사여래불과 사각의 연지가 보인다. 이 뒤편의 당우로 대웅전과 극락전 그리고 요사채가 존재하고, 연지 앞쪽에 너른 주차장 같은 공터가 있다.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통일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래 입상이다. 여래상이란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께서 깨달아 부처가 되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 불상의 조각이 수려하고 크기가 4미터에 이르는 대형이다. 머리는 소발이며 정수리는 둥글고 높다. 양족 귀가 크며 코도 오뚝하고, 눈은 가늘게 표현 하였던 것을 후대에 다시 손질 한 것 같다. 입은 다물고 작은 편이나 웃음을 머금고 있다. 법의는 양쪽어깨에서 가슴을 드러내면서 무릎아래까지 U자형으로 늘어져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여 손가락이 위로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정면으로 하여 손가락이 아래로 향한 여원인(與願印) 손모양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의 전통을 잘 계승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작품이다. 불상의 주위에는 옛날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주춧돌이 7점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예전에는 보호각 내지 전각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상으로 원통형의 돌을 다듬어 만들었다.


[석조여래입상]
석조 여래입상 옆에 천안시 향토문화재 1호인 석불 1기와 삼층 석탑이 있다.
전법륜인을 한 석조여래 입상은 절뒤편에 와불상태로 있었던 것을 현재의 자리로 이전 세웠다 한다. 불두는 용화사 앞의 산방천에서 수습하여 합체 하였다고 한다. 이는 불두와 불신이 다른 여래상의 합체 인듯하다. 불두만 보면 나발과 육계가 있고, 이마에는 백호가 있으며, 목에는 삼도가 있다. 불신을 보면 법의가 좌측의 석조여래 입상과 다르고, 수인이 여래만이 취하는 전법륜인을 하고 있다. 전법륜인은 부처님이 성도후 다섯 비구에게 첫설법을 하며 취한 수인으로 설법인 이라고도 한다. 입상에서 드물게 보는 수인이다. 법인은 통견이며 가슴부위가 통통하고 상의의 주름에 두줄의 띠 매듭이 수직으로 흘러 내린다. 크기는 3m 80cm로 악간 작으나 연화대좌위에 있다.
사찰을 둘러보고 귀가 길로 접어든다. 보물이 아니어도 지키고 알아야 할 문화재가 많다는 것을 배운다. 뭔가가 아쉬워 보물로 지정 되지 못하였는 지도 어렴풋이 느낀다.
천안을 벗어나며 독립기념관과 천안 삼거리 공원, 그리고 유관순 여사님의 발자취를 돌아 보지 않고, 일본으로 부터 독립의 의미를 깊이 느끼지 못한 죄책감이 든다. 무엇보다도 내가 이렇게 문화유산을 보며 즐기는 것도 다 독립된 국가에서 지내기 때문이라는 생각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음의 천안 여행은 독립운동에 관계된 태마여행을 가져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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