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젓한 사찰을 뒤로 하고 탑과 옛 사찰의 웅대함을 상징하는 당간지주가 남아있는 천흥사지로 향한다. 이전 주변의 정리작업으로 다소 산만했던 기억이 떠오르는데, 절의 입구라 생각되는 당간 지주에서 이곳 탑까지의 거리가 약 300미터로 멀다고 생각되었는데 그 사이로는 천흥천이 흐른다. 지금은 인가와 밭으로 사찰의 규모를 알수 없으나 커다란 사찰이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천흥사지오층석탑 위로는 새로운 천흥사가 자리하고 옆으로는 천흥저수지가 자리한다. 사지의 규모와 모습을 알수 없으나 천흥사는 고려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천흥사 창건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이르면 통일신라 말 적어도 10세기 창건된 절로 추측된다. ‘하늘이 흥한다’는 천흥이란 이름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936년 직후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된다. ‘하늘이 편하다’는 천안 이름은 930년 왕건이 지었다. 하늘이 편안하며 그 다음은 흥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천안의 국보는 3가지 이나 이중 봉선 홍경사 적갈비(국본 제 7호) 이외 성거산 천흥사 동종( 국보 280호) 과 보협인 석탑 (국보 제 290호)는 국립중앙박물관과 동국대 박물관에 각각 소장 되어 있다.
절터에서 출토된 국보 280호로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중인 천년이 넘는 천흥사 동종에 새겨진 명문에 의하면 고려 현종 원년으로 되어 있어 당간지주와 5층석탑도 이와 시대를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국보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동종은 높이 167.7cm, 종구 지금 95.5cm로 고려전기 범종 가운데 가장 큰 종이다. 전체적으로 검은 색조를 띠고 있는 이 종은 문양 장식이 섬세하고 화려하다. 천사가 하늘을 나는 무늬(비천상),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뉴(꼭대기 장식으로 종을 매다는 장치) , 종을 치는 부분(당좌) 등 처리 방식이 통일신라종 특징을 이어받고 있다. 균형잡힌 종 몸체와 세부적인 예술성으로 상원사종(725년),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 771년)과 함께 수작으로 꼽힌다.
천흥사 동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기까지 여러 군데를 거쳤다. 동종의 기구한 운명은 천흥사가 폐허로 변하면서 시작됐다. 조선초기 이미 천흥사는 사라진듯하다. 동종은 그후 여러 곳으로 옮겨다니다가 경기도 광주의 남한산성 종루에 설치됐고 광주군청에도 잠시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창경원박물관(이왕가박물원)이 생기면서 그 곳을 옮겼다가 해방후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다.

[보물 제 354호 천흥사지 5층석탑]
천안시와 고운문화재연구원은 2019년부터 2021년 까지 진행한 '천안 천흥사지' 발굴조사 결과, 탑 주변에서 고려시대 중요사찰로서의 격을 가늠할 수 있는 중심 건물인 금당지(추정)와 2호 건물지, '천흥'(天興) 이라고 적힌 명문 기와 등을 발굴, 고려시대 초기 최대급 규모로 창건된 왕실 사찰로 추정한다.
천흥사터에 서 있는 고려시대의 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거대한 모습으로, 고려왕조 시작 직후 석탑의 규모가 다시 커지던 당시의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다.
탑신을 받치고 있는 기단은 아래층이 너무 얕아 마치 1층으로 된 듯 하다.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각 면마다 7개씩의 안상(眼象)이 촘촘히 조각되어 있다. 위층 기단의 4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몸돌은 4면의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뚜렷하게 새겨놓았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완만하다. 지붕돌은 얇고 너비가 좁으며, 밑받침이 3단으로 매우 얕게 조각되었다. 경사면은 가파르다가 이내 수평을 이루고 있어 그 반전감이 크고, 네 귀퉁이에서의 들림은 날아갈 듯 가뿐하다.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돌의 구성에도 규율성이 있다. 특히 탑신에서 보이는 완만한 체감율은 온화하고 장중한 느낌을 더해준다.
절터에는 탑 외에도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가 남아 있으며, 동종(銅鍾)은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져 있다. 동종은 남겨진 기록에 의해 고려 현종 원년(1010)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 탑 역시 이와 시대를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물 제 99호 천흥사지 당간지주]
탑과 당간지주 만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당간지주는 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어 찾기가 쉽지 않다. 근처의 저수지 주변 카페와 테크길로 관광객의 발길이 있으나, 이곳이 예전의 카다란 사찰이고 많은 보물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찾아 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보존은 우리 옆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고 관심을 유도 할 그무언가도 갖추고 잇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천년전의 문화재를 지척에 두고 지내는 마을 주민들의 관심과 돌 봄이 그리고 그를 통해 그것을 잘 알리고 돌보는 환경이 조성 되었으면 한다. 마을에 자리한 석조물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고 있다.

[충남 유형문화재 만일사 관음 보살상]
또 하나의 천흥사 유물로 이곳에서 3~4km 떨어진 성거산 중턱의 만일사(晩日寺) 관음보살상이 있다. 일제강점기 사금을 채취하던 사람들에 의해 천흥사터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일제 말기 철물 공출시 일본인이 매입해 보관하다가 당시 만일사 주지가 거둬 보관했다고 한다. 불상 뒷면의 ‘통화20년 천흥사’명문으로 목종 5년(1002년) 만들어 졌음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렇듯 천안의 천흥사지 터에서는 국보급의 동종과 5층석탑, 그리고 위용을 자랑하는 당간 지주와 최근 발견된 만일사 관음 보살상이 있던 큰 사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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