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경상남도

함양 승안사지

如一 2022. 8. 9. 15:43

함양으로 들어서며 함양의 승안사지를 찾아본다. 

 

 

 

[승안사지]

 

승안사는 통일신라시대에 번창했던것으로 알려졌는데 1481년 성종 12년에 편찬된 '동국 여지승람'에는 기록이 있지만, 약300년뒤인 1799년 ('정조 23년)에 간행된 [범우고]에는 절이 없어졌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 사이 절이 사라 졌을 것으로 본다. 그전에 이곳을 방문시 강아지가 발밑을 따라 다녔는데, 지금은 민가의 큰개가 간만에 온 사람을 보고 목청것 짓어댄다.

 

 

 

 

 

 

[경북 유형 제 33호 승안사지 석조여래좌상]

 

승안사지석조여래좌상은 3층석탑에서 20m 변방 개천가에 있는 불상이다. 하반신은 땅에 묻힌채 상반신만 남아있는 불상은 현재의 크기만도 280cm이다. 오른팔이 떨어져 나가고 머리부분은 몸체와 균형이 맞지 않아보인다. 유난히큰 코와 일자로 다문 입이 엄한 표정이다. 선에 가까운 옷주름과 직선 적인 신체 윤곽선으로 생동감이 없어보인다. 이불상은 거구불상의 조형성이 잘 나타나는 고려시대이 석불 좌상으로 보고 있다. 

 

 

 

[승안사지 삼층석탑 보물제 294호]

 

고려시대의 탑이다. 이탑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두번 옮겨졌는데. 1962년에 현재의 장소로 탑을 옮길때, 홍치7년 (1494년)에 중수에 관한 문서가 발견되어, 조선 성종25년에 처음 탑을 옮겨 세웠음을 알 수 있다. 1층 몸돌위에 만들어진 사리구멍에는 원통형 사리함, 녹유사리병, 비단조각과 주며니, 유리구슬 등이 발견되었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통일신라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곳곳에 고려 특유의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위층 기단에는 부처, 보살, 비천(飛天) 등의 모습을 새겨두었다.  위층 기단의 맨 윗돌에는 연꽃조각을 새겨 둘러 놓았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이루고 있다. 1층의 몸돌에는 각 면마다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여 놓았다. 지붕돌은 몸돌에 비해 넓고,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다. 지붕의 경사는 급하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며 네 귀퉁이가 거의 들려있지 않다. 탑의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위에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과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가 남아있다. 대체로 통일신라 석탑의 기본을 잘 따르고 기단과 탑신의 비례가 균형을 잃어 잘 다듬은 작품이라고는 할 수 없으나, 곳곳에 나타나는 특수한 양식이나 장식에 많은 힘을 기울인 흔적 등 고려 전기의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승안사지의 옆 산중턱에는 일두 정여창 묘역이 있다. 

 

 

 

[정여창 묘역]

 

一蠹 鄭汝昌(1450-1504)은 조선 성리학사상 한훤당 김굉필과 함께 포은 정몽주의 학통을 계승하여, 정암 조광조·회재 이언적·퇴계 이황·남명 조식 등과 같은 성리학자들의 배출을 가능케 한 인물이다. 그의 묘소는 1504년 서거 직후에 일어난 갑자사화로 인해 부관참시라는 처참한 역사적 현실을 겪었던 곳이다. 묘역 내에는 일두 정여창의 묘와 정경부인 완산이씨의 묘가 자리잡고 있으며 정여창 묘 앞에 선 신도비는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하려 하자 자결을 시도하여 청사에 이름이 길이 빛나는 桐溪 鄭蘊(1569-1641)이 지은 것이다. 동계 정온 또한 이웃 고을 출신으로 일두 정여창을 사숙하였던 인물이다. 일두 정여창과 부인 정경부인 완산이씨 묘소는 조선 전기 사대부의 무덤양식을 잘 나타내주고 있으며 묘역 내 석물들도 우수한 작품으로 그 가치가 더욱 높게 평가된다.

 

 

 

 

 

 

[ 춘수정]

 

승안사지와 정여립의 묘소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다 . 정수민을 기리는 사적비와 누정이 자리한다. 1947년 정수민의 후손이 건립, 정수민은 정여립의 후손이다.

 

 

 

[하동 정씨 구충각과 정여항 신도비]

 

춘수정 옆에는 하동 정씨 구충각이 자리한다, 9명의 하동 정씨 충신들의 9개의 비를 모셔 놓은 곳이다. 

구충각은 하동정씨 일가 여덟 문중에서 아홉 사람을 지칭한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이에 호응하여 안음[지금의 안의면]에서 정희량 등이 난을 일으켰는데 이를 진압한 이들이 하동정씨 아홉 사람이다. 이에 나라에서 공을 인정하여 정려를 내렸다. 9인은 정희운, 정찬헌, 정윤헌, 정소헌, 정중헌, 정상헌, 정승헌, 정사헌, 정진후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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