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동으로 길을 나선다. 안동의 하회마을을 내려다보는 화산 자락에 선산이 있어 벌초및 묘사로 여러번의 발길을 하나, 목적한 일을 수행한다는 일로 정작 마을로 방문하는 것은 이루지 못하였는데 , 오늘은 일년에 한번 방문하기를 원하시는 모친의 뜻으로 성묘를 나섰기에 마치고 마을로 내려가 본다. 이곳 하회마을은 자주 와야 하는 곳이고,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마을이다. 이곳서 태어나서 자란 곳은 아니지만 왠지 어린시절부터 나의 고향으로 자리한 곳이다.

[마을 앞 낙동강과 부용대]
지형은 풍수학적으로 태극형(太極形)·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행주형(行舟形)이라고 한다. 낙동강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S자형을 이루면서 마을을 감싸고 흐른다.
하회마을은 동강가에 형성된 풍산 유씨의 씨족마을로 유운룡·유성룡 형제 대(代)부터 번창하게 된 마을이라고 한다. 예전 이곳이 물도리동 이라 불리고, 이를 한자어로 표기하면 하회인 것이다. 지금은 안동댐으로 수량이 적지만 도도히 흐르던 낙동강 물줄기가 이곳에서 S자 모양으로 동·남·서를 감싸 돌고 있고, 부용대라는 적벽과 이루어내는 독특한 지리적 형상과 강변의 소나무 숲인 반송정과 강변의 흰 모래사장이 빼어난 자연경관을 만들어 내고 있고, 마을에 자리한 기와집과의 조화를 이루어 한국의 미를 보여주고 있다.

유씨가 집단 마을을 형성하기 전에는 대체로 허씨, 안씨 등이 씨족으로 살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들 성씨에서 류씨 집성촌으로 된데에 관한 <만인적선 이야기>와 <피 천석 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고유의 '하회별신굿탈놀이'로 유명한 이 마을은 입구에 탈 박물관과 마을 앞에 있는 하회탈 보존회의 정기공연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보존 유지에 노력하고 있다. 별신굿에 쓰이던 탈들은 국보 제 121호 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제작 연대를 고려 시대로 추정하고 있어 마을의 역사가 뿌리 깊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회마을은 남촌과 북촌으로 나눌 수 있으며, 유서 깊고 크기를 갖춘 많은 문화재를 잘 보존하고 있다. 이곳 하회마을의 하회의 뜻은 물이 돌아나간다는 물도리동이라는 동네 이름을 한자어로 쓴 듯하다.

[하회마을 고택]
하회마을엔 대표적 가옥이라 할 수 있는 양진당(보물), 충효당(보물), 화경당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염행당 고택(국가민속문화재), 옥연정사(국가민속문화재), 겸암정사(국가민속문화재) 등 많은 건축들은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상과 발달된 집 구조 등을 연구하는데도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양진당과 충효당은 일찌기 보물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고, 고택으로는 원지정사, 빈연정사, 작천고택. 양오당 고택, 하동고택등이 있다. 더할 수 없이 멋스러운 경치에 민속과 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정신 문화의 연구·보존·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마을이다.
이번 여행엔 종가집과 몇 서원을 찾아 보고 추후 동네의 내력이나 보물이 아닌 문화재 등을 소개 하기로 하고, 보물로 지정된 이곳의 겸암, 서애 두 어른의 종가와 후학을 위하여 노력한 병산 서원을 찾아본다.



[양진당 겸암 류운룡 종가]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안동 하회 양진당은 겸암 류운룡(1539∼1601)의 집으로 매우 오래된 풍산 류씨 종가이다. 입암 류중영(1515∼1573)의 호를 빌어 ‘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류중영은 류운룡의 아버지이다. 양진당은 류운룡의 6대손 류영(1687∼1761)의 어릴 때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규모는 앞면 4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오른쪽 3칸은 대청, 왼쪽 1칸은 온돌방으로 바깥 주위에 툇마루와 난간을 둘러 마치 누(樓)집과 같은 인상을 주며 대청에는 문을 달아 3칸 모두 열 수 있게 하였다. 건물 안쪽 천장은 지붕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으로 꾸몄고 ‘양진당(養眞堂)’이란 당호와 함께 여러 현판들이 걸려 있다. 건물 안쪽 일부 재료를 만든 수법이 뛰어나고, 일반 주택으로는 제법 규모가 큰 조선시대 별당건축물 중 하나이다.



[충효당 서애 류성룡 종가]
1964년 보물로 지정된 안동 하회 충효당은 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이었던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의 집이다. 류성룡 선생은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선생이 쓴『징비록』과『서애집』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 받고 있다.
충효당은 행랑채, 사랑채,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와 안채는 손자인 졸재 류원지(1598∼1674)가 짓고, 증손자인 눌재 류의하(1616∼1698)가 확장 수리한 것이다. 행랑채는 8대손 일우 류상조(1763∼1838)가 지은 건물로 대문과 방, 광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을 앞면으로 긴 행랑채를 두고 안쪽으로 ㅁ자 모양의 안채와 一자형의 사랑채가 연이어 있다. 사랑채는 남자주인이 생활하면서 손님들을 접대하는 공간으로 왼쪽에서부터 사랑방, 대청마루, 방, 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안주인이 생활하면서 집안 살림을 돌보던 공간으로 동북쪽에 부엌을 두고 ㄱ자로 꺾여서 안방, 대청, 건넌방이 있다. 또한 건넌방 앞에는 마루와 2칸의 온돌방, 부엌이 있으며 사랑채와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 대청에 걸려 있는 ‘충효당(忠孝堂)’이라고 쓴 현판은 명필가였던 허목(1595∼1682)이 쓴 것이라고 한다. 비교적 지을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조선시대 민가 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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