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여행지는 원주시이다. 많은 변화속에 큰 도시로 변모하는 원주에는, 이곳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있는 나에게는 많은 추억이 깃든 장소도 많다. 이번 여행은 이곳 원주에 산재한 사지의 여행이다. 원주시의 대부분의 국보와 보물은 몇 개의 경전과 서적을 제외하면, 거의 오늘 찾아보려는 3개의 사지에 존재한다. 원주 부론면의 거돈사지, 법천사지, 그리고 지정면의 흥법사지 등 예전의 큰 절터에는 여느 사지처럼 승탑과 탑비, 석탑들 만이 존재하고 주변의 석조물로 큰절이 있었음을 알게 한다.

부론면 법천리에 있는 법천사지에 당도한다. 날이 덥고 볕이 따가워 멀리서 너른 절터를 바라본다.고개를 돌려 낮은 산을 바라보면 멀리 탑비가 보인다. 이곳이 국보 제 59호인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가 있고, 또한 지금은 대전의 문화재 연구소에서 복원작업 중인 국보 제101호 인 지광국사탑이 있었던 곳이다.

법천사지 입구의 절터앞에서 산을 향해 올려 보면 나지막히 축대를 쌓고 산중턱에 자리한 지광국사 탑비를 만날 수 있다. 법천사터에 세워져 있는 지광국사 해린(984∼1067)의 탑비로, 국사가 고려 문종 24년(1070)에 이 절에서 입적하자 그 공적을 추모하기 위해 사리탑인 지광국사탑과 함께 이 비를 세워놓았다. 지광국사탑은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보수중이며 탑비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돌을 세우고 왕관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에는 지광국사가 불교에 입문해서 목숨을 다할 때까지의 행장과 공적을 추모하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정유산(鄭惟産)이 짓고, 글씨는 안민후(安民厚)가 중국의 구양순체를 기본으로 삼아 부드러운 필체로 썼다. (나만의 문화유산 해설사 )


거북은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벌린 채 앞을 바라보고 있는데, 얼굴은 거북이라기보다 용의 얼굴에 가까운 형상으로, 턱 밑에는 길다란 수염이 달려 있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독특한 무늬가 돋보이는 등껍질은 여러 개의 사각형으로 면을 나눈 후 그 안에 왕(王)자를 새겨 장식하였다.

비몸돌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양 옆면에 새겨진 화려한 조각인데, 구름과 어우러진 두 마리의 용이 정교하고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머릿돌은 네 귀가 바짝 들려진 채로 귀꽃을 달고 있는데, 그 중심에 3단으로 이루어진 연꽃무늬 조각을 얹어 놓아 꾸밈을 더하고 있다.

왼족에 하얗게 단을 만든곳이 탑이 있던 자리이다. 이곳에는 아래와 같은 표지판으로 이곳이 탑이 있던 곳임과 수난과 아픔의 역사를 기록해 놓았다.

지광국사 탑은 고려시대의 승려 지광국사 해린(984∼1067)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원래 법천사터에 있던 것인데 1911년부터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오사카로 몰래 빼돌려졌다가 반환되었으며, 경복궁 경내에 있다가 보존처리를 위하여 국립문화재연구소로 옮겨졌으며, 기단 네 귀퉁이에 있던 사자상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해오다 탑과 함께 옮겨졌다.

일반적으로 통일신라 이후의 탑이 8각을 기본형으로 만들어진 것에 비해, 이 탑은 전체적으로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는 새로운 양식을 보여준다. 바닥돌은 네 귀퉁이마다 용의 발톱같은 조각을 두어 땅에 밀착된 듯한 안정감이 느껴지며, 7단이나 되는 기단의 맨윗돌은 장막을 드리운 것처럼 돌을 깎아 엄숙함을 느끼게 한다. 탑신에는 앞뒤로 문짝을 본떠 새겼는데, 사리를 모시는 곳임을 표시하기 위함이다. 지붕돌은 네 모서리가 치켜올려져 있으며, 밑면에는 불상과 보살, 봉황 등을 조각해 놓았다. 머리장식 역시 여러 가지 모양을 층층이 쌓아올렸는데, 비교적 잘 남아있다.
법천사터에는 지광국사의 탑비가 그대로 남아있는데, 탑비를 세운 때가 고려 선종 2년(1085)이므로 묘탑의 조성시기는 국사의 입적 직후인 1070∼1085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탑 전체에 여러가지 꾸밈을 두고, 4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등 자유로운 양식에 따라 만들어졌는데도, 장식이 정교하며 혼란스럽지 않다. 화려하게 꾸민 장식으로 인해 엄숙한 멋을 줄어들게 하고 있지만,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탑 가운데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한 작품이다.
이국보를 실물로 볼수 없어 아쉬워 탑에 관해 조금 더 알아보면, 지광국사의 사리를 봉안한 탑으로 이국적이면서도 화려한 풍모가 특징이며. 일제 강점기에 해체된것 외에도 6.25 전쟁의 폭격으로 옥개석을 비롯한 상부 부재가 여러조각으로 파손된다. 이후 1957년 시멘트 등으로 보수 되기도 한다. 마침 일제 강점기때 찍어 둔 유리건판사진에 석탑의 문양이 남아있어, 철저한 고증 끝에 보수작업이 올 1월 말 완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원주 법천사지의 원자리로 돌아가 탑의 형태로 세워질 예정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일제 강점기 골동품상에 의해 명동으로 이동된지 110년만의 귀향이라 한다. 석탑을 원위치에 놓고 보호각을 세울지, 전시관으로 이전 할지 , 하는 뉴스를 접한 일이 있다. 작년에 이탑이 대전의 문화재 연구소에 있다하여 보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이 문화재연구소를 찾았다가 문전박대를 받은 기억이 난다. 일반인이 관람을 위해 드나 드는 곳이 아닌지 모르고, 무작정 찾은 어리석음에 웃음을 짓고 나온 경험이 있다. 오늘 혹 이곳으로 옮겨 오지 않았을까 하는 미련속에 들렀지만 탑비만 보고 돌아선다. 아무튼 하루 빨리 그 화려한 모습을 보고 큰 감동을 느끼고 싶다. 그때는 기꺼이 문화재를 원형에 가까이 복원하여 보전하는 우리의 문화재 연구소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낼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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