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서울

서울 : 길상사

如一 2024. 3. 13. 14:01

 한국을 찾은 누님 내외 분의 하루 일정에 동행하고자 서울의 성북동으로 향한다. 경복궁을 지나 성북동으로 넘어가서 잠시 와룡공원을 찾아간다. 성벽을 따라 걷는 등산객 사이에서  조선왕조의 도읍지인 한성부에 축조된 한양도성을 보게 된다. 1396년 (태조5년)에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네산의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으로 평균 높이 5~8m 길이 18.6km이라고 한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과 사소문(혜화문, 소의문, 광희문, 창의문)을 두었는데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고 한다. 2014년 전체구간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복원 되고, 숙정문, 광화문, 혜화문은 다시 세워졌다고 하니, 성벽 일주와 모든 성문을  보고 싶어지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안내문이다.

 

[사적 제 10호  한양도성] 

 

길을 돌아 내려와 성북동의 명소인 길상사를 찾아본다. 사찰 위 편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걸어 내려 오면 삼각산 길상사의 일주문에 도착한다. 원래 이 곳은 대원각이란 고급 요정이었다고 한다. 문화재라 할 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해서 방문을 미루어 오던 곳이 었는데, 이 곳 성북동은 정법사에 다니시던 할머니로 인해 더러 방문하던 곳이라 이 곳을 스쳐 지나 간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일주문]

 

1997년 개원한 길상사의 개원에 관하여는 여러 일화가 있으며, 근대의 종교계의 성인이신 무소유의 법정스님과 김수환 추기경의 염원이 깃든 곳으로, 사찰의 창건에 관여된 스님과 개원시 축사를 하신 김수환 추기경으로 인하여 종교 화합의 장을 이루어 낸 곳이라 한다.

  

 [극락전]

 

사찰 정면에 자리한 극락전이다. 길상사는 무소유의 범정스님과 무소유에 감동된 김영한의 인연으로 탄생한 사찰로 10여년의 권고와 거절의 시간 속에 법정이 뜻을 받아 드려 생겨난 사찰로, 이곳의 진영각에는 법정스님의 유골이 모셔진 장소가 있으며, 이곳은 서울에 자리하지만 법정스님과의 인연으로  승보사찰 송광사의 말사라고 한다.

  

 [길상화 사당]

 

1000억원 가치의 재산을 희사한 길상화 (김영한)은 1999년 길상헌에서 눈을 감는다.

  

 [길상헌]

 

지금은 스님의 숙소로 쓰이는 듯 하다. 계곡에 자리한 별채 정자 건물로 풍류를 즐기는 장소로의 한옥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관음 보살상과 7층석탑]

 

관음 보살상은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 교수가 조각한 것으로 두 종교간의 화합을 염원하며 기증한 것으로, 마치 마리아 상이 연상되는 보살상이다. 

7층 석탑이 설법전 옆에 자리하는데, 기독교 신자인 영안그룹 백성학 회장이 가평에 있던 9층 석탑을 성북성당, 덕수교회와 함께 종교간의 교류를 위해 무상으로 기증한 것을 탑신부 2개층을 낮추어  7층 석탑으로 세운 것이다,  조선 중기작으로  추정되며, 7층 탑구조에 사사자가 탑신을 받친 구조가 독특한 탑으로, 2012년 기단부에 오장경, 금강저, 오불, 108향 염주, 다라니등을 봉안하고, 이후 시절 인연으로 미얀마의 제 1보궁 우뚜리와 완사큰스님이 600년전  탑에서 출토한 부처님 오색정골사리, 구강사리, 응혈사리와 제자인 마하가섭존자, 라훌라 존다 등의 사리를 2013년 탑신주에 봉안 탑이라 한다. 보수 과정에 옛날의 탑에서 봉안된 사리와 사리함, 불교 장식, 서적을  발굴 하는 것만 알아 온 내게, 이곳은  새로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이 의미를 달리 하게 한다.

 

 [설법번]

 

소강당으로도 이용되는 곳이라 한다. 건물 살에  자리한 보상상이 눈길을 사로 잡으며, 현대 개원을 대표하는 사찰 이미지에 맞게 신선한 감을 전해준다.

 

[범종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