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보고자 했던 마지막 남은 보물 연무관은 남문 주차장에서 멀지 않아 주차장을 지나 연무관을 찾아간다.
[보물 광주 연무관]
1625년(인조 3)에 창건된 것으로, 1626년에 창설된 중앙 군영인 수어청의 중심 건물이다. 1795년 수어청의 경청이 폐지된 이후 수어청의 본영이자 광주유수의 집무처로 사용되며, 창건 이래 세 번에 걸친 중수의 기록을 상량묵서와 상량문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으며, 편액에 있는 연기는 1762년(영조 2)의 것이라 한다. 기둥을 보호하면서 건물의 위용을 나타내는 주련은 기둥보다 더 큰 나무를 사용하여 기둥 외부를 완전하게 감싸도록 하였다.
[연무관의 측면]
한옥으로 지어진 학교 건물 옆에 자리한 연무관은 크기나 위용에서 주변을 압도하는 분위기로 자리한다. 정면 5칸, 측면 4칸으로 정면과 배면에 퇴칸을 두고 있으며 좌・우측에도 퇴보를 설치하여 구성하고 있다. 군사시설 그리고 연병장 같은 공간에서 국왕이 백성을 직접 대면 할 수 있었던 장소로서의 성격이 있고, 연무관 뒤편에는 지방행정을 담당하는 판관의 근무처와 주위에 향청, 작청 등의 관아시설들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연무관의 내부모습]
특이한 점은 연무관이 군사시설의 관영건축으로 중앙부에서 기둥을 후면으로 이주하여 벽을 세우고, 국왕이나 수어사가 자리할 수 있는 공간을 형성한 것이다. 연무관은 군사시설 기능뿐 아니라 정조의 남한산성 행차시 국왕이 백성들과 대면한 정조의 애민정신이 깃든 장소라고 한다.
남한산성이 문화유산으로 등재 된 후 많은 정비작업을 통해 새로운 명승지로 자리매김 하는 것 같다. 행성 및 많은 건물과 성벽이 새 단장 된 것 같다. 이곳으로 편히 차로 올라온 길이 남한 산성에 식량을 추진하던 길이라 일러주는 친구를 통해 전쟁에서 겪는 일반인이 고생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전쟁은 군인 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전쟁이라는 것에 슬픔을 느껴본다. 우리에게는 아픈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삼전도의 굴욕을 되새기는 이곳, 남한 산성이 주는 교훈을 깨우치는 교육의 장으로 거듭 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물을 통해 문화유산이라는 자랑보다는 이 땅의 미래세대에게 아픈 역사를 들려주고 나라의 중요성을 느끼게 하는 교육의 장으로 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며 집으로 향한다.